지금은 뭐 그런 생각 별로 안하지만
과학고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참 기분이 좋았다.
엘리트라는 생각도 들고, 뭔가 달라보이고, 세상이 다 내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분 있잖은 가?
뭔가 성공이 보장된 삶이라는 생각도 들고 자부심도 있고 정말 이 나라의 운명을 우리가 짊어졌다는 생각(사명감)도 하고 말이다.
교장 선생님의 훈화나 선생님의 말씀이나 부모님들의 기대. 뭐 그런 것들에도 그게 많이 들어있었다.
"자네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사람들이야."
마치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 같은 분위기였다.
혹은 미국 동부에 있는 아이비리그에 진학할 예비 학생들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립학교.
(물론 과학고는 국립이지만...)
영화로 치면 해리포터의 호그 와트 마법학교나 X-man에 나오는 학교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학교 같은 것 말이다.
교복도 입고, 뱃지도 차고(기수마다 색이 달랐다.), 명찰도 중학교 때처럼 천으로 된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된 거였다.
동네 슈퍼를 가거나 미장원에 가거나 버스를 타도 사람들이 부러워 하고 뭐 그런 것들..
자랑스럽게 중학교 졸업식 때 대표로 표창장도 받고 "과학고 xxx군, xxx양 합격" 이렇게 플랭카드도 걸어주고 말이다.
광주과학고 문을 들어서면 바로 안쪽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모든 선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기 MIT xx학 박사."
"2기 KAIST xx학 박사."
등...
내가 입학했을 때는 15기였는 데, 박사 학위자는 한 30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과학고 건물에도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KAIST 합격생 XX명, 이름 누구누구.."
매일 볼 때마다 뿌듯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식사시간마다 길게 줄을 서는 데, 선배들은 모두 기다리면서 영어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학생수도 적었고, 다들 똑똑한 애들이라 대화가 통해서 좋았다.
처음에는 다들 너무 똑똑하면 어쩌나 긴장을 많이 했는 데, 예상보다는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도 많기는 했다.
내가 입학한 98년에는 과학교 비교내신이 폐지되서 경쟁률이 낮았으니까.
동기들보다는 선배들이 더 대단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 해부터는 이공계 위기 때문에 자부심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1학년 여름에 KAIST 견학도 2번 다녀왔는 데,
정말 KAIST는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곳이라면 평생 있을 만 한 곳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잔디밭도 멋있고, 오리연못도 그렇고, 뭔가 달라보이는 선배들도 말이다.
그리고 국가에서 지원도 아주 잘 해준다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 까 생각했다.
매일 새로운 것을 연구한다느니, 대학원생과 비슷하다느니, 천재들만 있다더라,
영어 같은 외국어로만 대화한다, 학문 수준이 교수급 선생님들이 많다,
뭔가 새로운 걸 발명할 수도 있다.
뭐 이런 소문들이 있었는 데, 그건 다 과장이고 사실 그냥 성적 좋은 고등학생 모아서 진도 조금 빨리 나가고
복습 더 많이 하는 게 다였다.
지금와서 보면 내가 이미 얻어버려서 그냥 당연한 것으로 보이고
절반은 국가에서 더 이상 신경을 안 써줘서 그런 혜택들은 10~20년 전의 것들이고
이제는 찬밥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중학교 때는 과학고만 가면 뭐든 될 거라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때도 KAIST만 가면 다 될거라고 생각했는 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대학 와서는 미국 유학가서 TOP 10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세상 열릴꺼라고 생각했는 데.
그건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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