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그룹 회장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챙기고 있는 비서팀장들을 이만큼 잘 표현해주는 단어는 없다. 세간에 얼굴이 잘 알려지지도 않고 직급도 높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실세’로 통한다. 그룹 회장들의 심중을 속 시원히 알고 싶으면 이들을 찾으면 되겠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행동만큼이나 입도 무겁다.
삼성 구조조정본부 비서팀장인 김준(46) 상무는 이건희 회장이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찾을 수 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계속된 이 회장의 장기 해외 체류도 대부분을 함께 했다. 공식 직함은 회장실 1팀장. 삼성본관 28층 회장실 바로 옆에서 근무하는 김 상무는 이 회장 가족의 대소사는 물론, 구조본부 내 재무·인사·경영진단·홍보 등 주요 팀의 업무를 취합해 이 회장에게 보고하는 등 태평로 삼성본관과 한남동 이 회장 자택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에 입사한 김 상무는 지난 94년 비서실 부장으로 들어오면서 비서 업무를 맡았다. 비서팀장을 맡은 것은 지난 2001년. 비서팀의 ‘위상’과 달리 부사장급 이상인 구조본 내 각 팀장에 비해 나이도, 직급도 아래인 점이 이채롭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비서팀장인 인유성(48) 상무도 ‘수족’ 같은 존재다.LG전자로 입사해 LG필립스LCD의 ‘시장전략담당’으로 일하던 인 상무는 지난 2002년 당시 LG 구조조정본부 비서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상무 승진과 동시에 지주회사로 출범한 LG의 비서팀장으로 발령이 났다. 총무, 시장전략, 기획 등 주요 업무를 두루 거친 이력에다 4년간의 해외법인 근무로 쌓은 글로벌 감각 등이 발탁 사유였다.
지주회사 출범으로 단촐해진 비서실 살림이지만 올들어서만 해외 출장 5차례, 국내 출장 7차례에 각종 전략회의 주재를 소화한 구 회장의 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야 하는 자리인 만큼 위상은 만만치 않다. 특히 구 회장이 세브론 텍사코, 필립스, 허치슨 왐포아 등 주요 파트너들을 만날 때 비서팀은 더욱 바빠진다.
대신 인 상무는 다른 그룹 비서팀장과 달리 구 회장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차장급 수행비서 한 명만 대동하고 조용히 다니는 구 회장의 ‘소박한’ 스타일 탓이다.
현대차 정몽구(MK) 회장의 비서실장인 김승년(48) 전무는 일선과장 시절부터 10년 넘게 MK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서 자재를 담당하다 비서로 발탁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쌓인 세월만큼이나 누구보다 MK의 의중을 잘 헤아린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건국대 교육학과 출신으로 머리 회전이 빠르면서도 일처리가 매우 치밀해 MK의 신뢰를 굳혔다.2001년 이사로 승진한 뒤 1년만에 상무로 올라간 데 이어 올초 전무로 승진했을 정도다. 다소 날카로운 인상과 달리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회사 안팎의 평이 좋다. 그러나 여느 그룹의 비서실장이나 마찬가지로 세간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부담스러워한다.MK의 중요한 공·사석 행사는 거의 다 쫓아다니지만, 빠질 때는 과감히 빠진다. 이번 미국 앨라배마 공장 방문 때도 수행하지 않았다.
2001년부터 최태원 SK㈜ 회장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는 박정호(41) 상무는 SK 내에서 최 회장의 ‘아바타’로 통한다. 일정을 함께하며 수행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을 넘어 ‘전략 참모형’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최 회장과 비슷한 연배인데다 고대 동문으로 때로는 친구처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식을 따지기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최 회장의 코드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박 상무는 고려대 경영학과와 조지워싱턴대 MBA 출신으로,SK텔레콤 뉴욕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SK텔레콤 ADR(미 예탁증권) 발행 등 글로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해온 국제금융 전문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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