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1일 화요일

고생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힘들던 시절이 많이 있었다.
지금은 가장 편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우리집은 연탄을 때는 집이었다.
뭐 고생은 어머니께서 매번 연탄을 가시느라 하셨지만
정말 추웠다. 샤워기도 없고 따뜻한 물도 안 나왔다.
겨우 1주일에 한 번 옆에 있는 목욕탕에서나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었다.
수도꼭지도 밑에 달려있어서 허리를 완전히 바닥에 박아야
세수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어딜가든 가스 보일러를 쓴다.

고등학교 기숙사 때도 너무나 추웠다.
습기도 높고 곰팡이도 많고 침대도 없었다.
샤워실에도 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아침에도 늦게 일어난 사람은 따듯한 물에 세수를 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군대와 시설 수준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밥은 또 어찌 그리 맛이없는 지, KAIST는 훨씬 맛있다.

서울에 처음 취직하러 간 날도 잘 곳이 없어서
회사 기숙사에 겨우 얻혀 살았다.
6개월간 거실 바닥에서 외풍을 막아가며 잤다.

군대에서도 힘들었다. 1개월짜리지만 하루에 6시간 자고
밤에는 야간근무, 불침번을 쓰고
세상에서 제일 불편한 군복과 군화를 엄청나게 껴입었다.
감기, 후두염, 장염 등에 걸리고 발에는 물집 잡히고
샤워도 2주에 한 번 밖에 안 시켜준다.

요즘은 다들 입식 생활을 하고 듀오백 의자가 있어서 더 이상 허리도 아프지 않다.
중학교 3학년 이후로 7년간 허리가 너무 아팠었다.
헬스장, 수영, 듀오백 의자의 도움으로 이제는 무리하는 날이 아니면 아프지 않다.

피부도 늙어가고 있다고 하지만 요즘은 비누 대신 좋은 폼클렌싱 제품 등을 쓰고 있다. 고등학교 2년 동안 여드름이 너무 많이 나서 매일 얼굴이 붓지 않은 날이 없었다. 머리결도 그 때는 안 좋고 머리카락이 자꾸 피부를 찔려서 여드름이 붓고 터지지 않은 날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잠도 많이 자지 못했다. 하루에 6시간 정도 겨우자고 매일 수업시간과 자습시간에 2시간씩 몰래 졸면서 자야 했다.

지금 세상에서 많이 소외된 것 같지만 더 슬프게 울던 때도 많았다.
6살 때 컴퓨터 학원을 다니려고 했는 데, 알파벳을 외워오라고 했다.
그 때는 한글도 모르던 때라 엉엉 서럽게 며칠간 울고 학원을 가지 못했다.
고 1때 한국의 인터넷이 보급될 때도 그 전과는 달리 엄청나게 정보화에서
밀려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mail 계정, web browser, ftp가 뭔지
몰라서 너무 창피했다. 그전까지는 내가 학교에서 제일 컴퓨터도 잘한다고
생각했었는 데 말이다. 친구들이 물어봐도 모르니 그냥 퉁명스럽게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세상 뭐든 처음하는 날은 다 힘들었다.
처음 컴퓨터를 배우고 1년 동안 VDT 증후군처럼 근육통이 너무 심했다.
키보드는 물론 마우스를 잡을 때도 너무 손이 아팠다.
지금은 익숙해지고 자세도 올바른 편인지 그렇게 힘든 날은 없다.

수영도 처음 1개월간 정말로 물을 많이 먹었다.

휴대폰을 처음 사던 날도 어찌나 바보 같던 지,
돈을 주고 중고 휴대폰을 사왔었다.
전 사람이 쓰던 전화번호들도 그대로 저장되있고
여기 저기 칠이 다 벗겨있었다.
통화료가 기본 요금이 없는 대신 10초에 90원이나 했다.
(일반적으로 휴대폰은 10초에 20원~10원 쯤 한다.)
부모님께 한참 혼나고 바로 다시 시내에 가서 환불 받아왔다.

엄청나게 불편한 과거를 어떻게 살았는 지 모르겠다.
휴대폰 사기 전에 나는 삐삐도 한 번 가져보지 못했다.

회사에서 제대로 PHP를 배우던 때도 생각난다.
KAIST 나왔으니 당연히 다 알거라고 일을 막 주는 데, 하나도 몰라서 참 당황했다.
3개월간 무진장 고생하고 덤으로 내 홈페이지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3년간 글을 계속 썼다.

유럽여행을 가서도 처음보는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썼다.
매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영어를 못하는 프랑스인 할아버지, 미국인들도 많이 봤다.
프랑스로 가는 야간 열차에는 나와 그 프랑스인 할아버지 2명이 탔는 데,
서로 혹시나 강도는 아닐지 걱정이 되서 잠을 잘 자지 못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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