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구치 유키오의 초학습법에서 인용.
"칠판에 수식을 쓰고 있는 도중에 교사가 실수를 깨닫고 처음부터 다시 계산해야 할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교사로서 참으로 체면이서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커다란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중략--
"대부분의 경우 수식을 마지막까지 전개하고 나서가 아니라, 도중에 알아차리는 것이다. 예일대학의 천재적인 S교수는 계산에서 자주 실수를 저질렀다. 그런데 언제나 도중에서 실수를 발견한다. 즉, 오로지 식만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요소요소에서 확인을 하는 것이다. 어디에서, 어떻게 확인하는 지가 중요하다. 한편, 교사가 실수를 한 경우에 가만히 지켜보면, 그것을 정확한 식으로 고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위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이것은 교사가 실수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완성된 논문을 보는 것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추론이나 사고 방식의 과정이 실수에 의해서 밖으로 드러나다.
S교수는 또 플러스와 마어너스 기호를 자주 틀렸는 데, 그는 "부호는 결과의 본질에 영향을 주지 안흔 다."라고 말했다. 이것을 결코 억지가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
(곱셈만 있다면 그렇다. 수학적으로 그런 independent한 경우가 더 많이 있는 데 잘 모르겠다. - 현성의 주석)
식의 전개에서만이 아니다. 칠판에 그래프를 그릴 때 눈금을 잘못 표시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점을 적절히 표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것을 수정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논의의 요점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정확한 그림을 보는 것보다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교사가 실수를 하면 교사의 사고 과정이 밖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것은 학생에게는 두번 다시 오지 않는 기회이다. 보통 교사가 실수를 하면 학생들은 칠판에서 눈길을 떼고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한다. 이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교과서에는 시룻가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교육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교과서를 읽는 강의라면 차라리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편이, 자신이 알고 싶은 곳만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다.
조금 역설적이지만, 라디오 강좌나 텔레비전 강좌(+ 인터넷 강좌 - 현성 주)의 최대 결점은 교사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수에 어떻게 대처하는 지 관찰할 기회가 없다. 새뮤얼 버틀러(1612~1680, 영국의 시인이자 풍자 작가)는 "항상 올바른 것만큼 커다란 잘못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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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본 내용 중에 가장 인상적인 구절 중에 하나인 것 같다.
"항상 올바른 것만큼 커다란 잘못은 없다."
요즘 회사에서 선임자의 documentation을 보면서도 느끼는 점이다.
그들은 "완벽한 문서"만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의 실패나 실수, 사고의 과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언제나 "완결된 상태"(사실은 버그 투성이지만)임을 강조하고 절대로 자신들의 코드의 약점이나 소위 말하는 지저분한 부분, 버그, 에러메시지조차 말해주지 않는 다.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는 지, 문서는 어디서 구했는 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 지는 절대 적지 않는 다. 그들이 그것이 자신들에 대한 '신비감'을 떨어뜨리고 자신들을 천재의 레벨에서 우리와 같은 레벨의 인간으로 강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또한 Pair Programming의 장점이기도 한데.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옆 사람의 실수를 직접 보면서 같이 수정하고 그 사람의 사고 과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래서 나는 Pair Programming이나 어깨 넘어서 남이 하는 것을 몰래 보고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현성이는 따라쟁이다. 솔직히 지루한 교과서를 읽는 것보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데도 따라하면서 그의 거울이 되고 그의 단점을 찾아내서 비판하는 자세로 수용하는 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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