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30일 금요일

[기사]투명사회 길목 ‘퇴로’ 못찾아

‘잇단자살’전문가 분석

지난해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을 시작으로 올 2월 안상영 부산시장, 3월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그리고 또다시 박태영 전남도지사 등 비리사건에 연루된 유력 인사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이어지자, 많은 시민들이 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사회지도층에 요구하는 도덕적 기준이 크게 높아진 데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더이상 자신의 잘못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 유력인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김교헌 충남대 교수(심리학)는 “종전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대한 투명성이나 도덕성의 기준이 그렇게 강하게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리사건에 걸리더라도 관행이라고 치부하며 명예를 유지하면서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며, “하지만 부패청산의 급속한 추진으로 세상이 급변했고, 이런 사회·정치적 변화가 이들의 자살을 추동한 요소가 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 부패감시도 촘촘
원인 다른 ‘모방’막아야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민주화가 이뤄져 부정부패에 연루된 인사들이 숨을 곳이 없어졌다”며, “예전처럼 속으로는 나쁜 짓하면서 겉으로는 도덕군자인양 행동하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한 수치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자포자기적 상황이 정신적 공황상태로 치달아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것이 무너진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순탄한 삶을 살았던 저명 인사들의 경우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고 최후의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몽헌 회장 이후 자살이 일종의 ‘유행’으로 자리잡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어렵게 자란 사람들은 일종의 예방주사를 맞은 것처럼 난관에 봉착해도 잘 극복할 수 있지만, 최고의 자리만을 누려온 저명인사들은 어려움에 부닥칠 경우 시각이 좁아지고, 이때문에 불합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사회 지도층 사이의 자살이 일종의 유행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하규섭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도 “최근 여러 사회 저명인사들이 잇달아 자살을 시도하고 또 이 사실이 대중 매체에 의해 널리 알려져 이를 뒤따르는 모방이 있을까 두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잇달아 사회 저명 인사들이 자살했다고 해서 특별히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각각의 원인들을 잘 알아보아야 한다”고 지적한 뒤 “이 때문에 자살 유행이 돌거나 자살을 촉진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