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0일 목요일

진중권

시험 기간임에도 진중권씨가 CT대학원 세미나에 와서 구경갔다.
수수한 청바지, 잠바 차림으로 와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갔다.
중앙대 교수, 미학 오디세이 저자 답게 말 무지 잘했다.
내가 본 다른 교수님들과는 달리 매우 진보적이고
(교수 중에서만 진보적인게 아니라 정말로 진보적인 사람이니까.)
대중 문화 평론가답게 일반 대중과 젊은 층을 많이 이해하고 있었다.


괴테, 하이데거 등의 이야기가 좀 나오기는 했지만
그리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 것 같다.
(참고 서적이나 문학 작품만 한 5~6개는 소개한 듯.)


주제는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서 따온 말이다.
(나도 안 읽어서 모르겠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했다.


1차 Image 시대(선사시대) -> Text 시대(역사시대) -> 2차 image시대(21세기)


1차 image시대는 구술(oral)을 주로하고 주술(magic)을 믿는 시대.
인간이 세계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자의식 획득)
자연을 타자화하고 소외감을 느끼고 자연과 낯설어졌다.
그래서 공포감이 증가했다.
'상징 형식' - 예술, 종교, 철학이 나왔다.
자연 밖으로 뛰쳐나와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Ek-sistens, existence)
existence의 트라우마로 창조신화가 있다.
아담이 에덴을 벗어남에 따라 노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기 위해 상상력이 동원되고 주술이 생겨났다.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믿어버린다.
세계의 모상을 뜨고 믿어버렸다. 그래서 세계와 다시 화해를 했다.
다산의 상징인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선사시대에 그렇게 영양상태가 좋은 여인이 많이 있을 수가 없다.
(다산 - technology가 없으므로 머릿수가 가장 중요하다. 농사, 사냥, 전투시.)
동물의 그림을 많이 그리면 정말 동물이 많이 잡힐 것이라고 믿었다.
아프리카 수족은 선교사들이 버팔로 그림을 많이 그려가서
자신들이 잡을 수 있는 버팔로의 수가 줄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싫어했다.
우리나라도 출산 후 금줄을 쳐서 사람의 출입 막았다.
virus 노출이 줄어서 실제로 유아 사망률이 줄었다.
하지만 주술은 실패했고 image로는 세계와 인간의 화해가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문자가 등장하고 역사시대가 되었다.


text시대는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이성, 합리적 사고 -> 플라톤 -> 추상, 이데아, 관념론 ->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등..
-> 상상력보다는 논리력이 중요.


역사시대 -> 글 -> 철학 시작 -> 문명의 시작
그리스는 문자의 도입이 비교적 늦었다.
(반면 다른 문명은 쐐기문자 - 길가메시 서사시등을 통해 더 일찍 문자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장점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문자는 권력이니까.
구술이 오래동안 남을 수록 민주주의에는 유리했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상적 사고를 하여 조각, 예술이 발달 했다.
성경의 신은 text로 존재한다. 형상으로 만드는 것을 모두 금지했다.
반면 그리스의 신은 image로 존재한다. 올림푸스 신들은 다들 서사시, 조각, 건출물로 존재한다. 모두 예술의 형태이다.


플라톤은 이성주의자라서 예술가(시인, 조각)와 싸웠지만 자신의 글도 대화체 희극으로 썼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글을 쓰지 않았다. context없는 글은 여기저기 떠돌면서 문제만 일으킨다고 보았기 때문에 대화를 좋아했지 글은 쓰지 않았다.)
결국 이것은 문명의 대립(image vs text)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논문체가 시작되었다.
논문체(monolog형식 = 자기와의 대화, 독백)이 시작되었다.


17세기 미적분이 등장했다
미적분의 의의는 자연을 남김없이 수학으로 번역이 가능하게 된것이다.
미적분 이전의 text가 alphabet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숫자, 방정식이 text가 되었다.
자연이 방정식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과학자들은 세계의 모상이 아니라 모델(모형, model)을 만든다.
세계의 진짜 모습은 알 수가 없고, 모델이 쓰는 데 지장이 없기만 하면 된다.
안맞으면 모형을 조금씩 바꾸면 된다. 실용적이고 실천적이다.
세계는 black box라서 결코 알 수 없다.
가장 많은 것을 설명하는 모델이 좋은 모델인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과거에는 현대인의 심리라고 말했지만
요즘 사람들은 그서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심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19세기까지 미적분은 널리 쓰이지 못했다. 계산량이 너무 많았으니까.
computer가 나온 이후에는 계산을 컴퓨터가 해주기 때문에 미적분이 널기 보급되게 되었다.


2차 image시대는 과거로의 회귀나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text시대를 토대로한 새로운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text의 속성을 지닌 image의 시대.
text가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한 image. - techno image
그리고 다시 상상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상상만 하면 기술이 그것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기계가 해야할 일(노가다)을 인간이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인문학의 시대가 오면서 인문학자들도 당황하고 있다.
말세론자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 인문학은 망한다고 보고 있고
진보적인 사람들은 미디어 환경이 text에서 영상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paradigm shift인 것이다.


그리고 이번 세기의 가상(virtual)세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가상을 싫어하는 이유는 가상이 가짜이기 대문이라고 했다.
한편, 플라톤에 따르면 사실 현실 세계도 이데아의 그림자(가상)에 지나지 않는 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없어졌다.
game 속 영웅들이 아이템을 팔아 매달 1억씩 돈을 벌기도 한다.
생산 자체가 비물질화 되고 있다. - IT, BT
가상이 바로 현실이 된다.


문자가 소리, 그림이 되었다.
소리 - radio, TV
그림 - 영상, 시각적 presentation, 디카, 동영상, 캐리커쳐


과거의 책에서 그림은 일러스트레이션 역할이기 때문에 그림을 빼도 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책은 그림이 중요하게 되었다. 그림이 없으면 책의 내용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ex) 1994년에 진중권이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쓴 책.


internet의 글쓰기는 말하기를 그대로 받아적는 것이다.
150년전 사진, 영상 -> 방송 -TV, radio -> 인터넷


. 선사시대의 image와 현대 image의 차이.
선사시대 : 조각 - 3차원,  그림 - 2차원
문자시대 : text - 1차원
동영상 : 점(입자, particle, pixel) - 0차원


데카르트의 '성찰' - 이성적이기 위해서는 감각, 감정, 상상력을 버려라.
토마스 아퀴나스 - "신이 창조한 그대로를 묘사하라."


과거 : 주술적 상상력(주관적)
현재 : 기술적 상상력(객관적)


중세 영웅시대의 인간형 - 단순과격, 무식, 몸 튼튼, 머리 텅텅(그리스, 중세) - 개인적인 갈등은 결투로 해결하고 집단적 갈등은 전쟁으로 해결함.


text 시대의 인간형 : 학자형, 수도승형, 공부 잘하는 범생형, subject형


기술적 image 시대 - 기계가 담당할 영역을 인간이 할 필요가 없음.
기술 + 상상력(imagination)
이제는 상상력의 시대이다. 뭐든 상상하면 기술이 언젠가는 해법을 찾을 것이다.
Project형 인간형이 떠오름.
가상은 pixel, 현실은 particle. 차이는 해상도에 있을 뿐이다.


핸드폰의 실질적 수명이 10년 이라면 우리는 1~2년만 쓰고 바꾼다.
하지만 10년어치 수명의 가격을 지불한다.
우리는 제품의 상징적 가치(브랜드, 디자인 등..)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조선소의 배들은 매우 무겁지만 같은 가치를 지니는 빌게이츠의 product는 무게가 없다.
가상과 현실의 boundary가 없어졌다.
플라톤의 추상에서 니체의 예술로 넘어갔다.


새로운 image의 시대에는 2차 구술성의 시대가 되고
시간의 가역성, 시간의 공간화, 비선형화가 있다.
지금보지 못한 방송은 VOD로 인터넷에서 보면되고
text는 copy&paste로 가져오면 된다.


우리나라는 digital 돈키호테들이 많이 산다.
가상에 빠져서 게임만 죽도록 하고 돈키호테가 죽는 순간 모든 것이 상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컴퓨터를 끄고 나서 허탈감을 느낀다.
한국의 인터넷은 독특하다. 사회적(social network)이다. 방문이 중시되고 감정적, 정서적이다. 구술문화가 남아있는 후발 문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싸움이 매번 일어나고 기사 밑에는 감정적 욕과 방명록 인사말 등이 난무한다. 싸움구경은 언제나 재미있다.
반면에 독일의 인터넷은 infomative하다. 논쟁적이지만 학자의 심포지움 같다. 매우 이성적이다.


인터넷은 구어화가 많이 진행되었다.
축약형, 화살표, 배낟이어그램, 이모티콘이 난무한다.


현재 image는 text를 바탕으로 한 image가 된다.
text를 모른체 image만 본다면 선사시대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진도 사진사의 머리 속의 산물이다.
예를 들어 조선 일보와 한겨례 신문의 사진을 보면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사진이 실린다.
새로운 linguistic competence가 필요하다.
미래의 문맹자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을 못 읽는 사람이다.
(image 밑의 text를 읽어내라.)


windows - icon - 도스의 복잡한 명령을 image가 대신했다.
과거에는 programmer는 text, user는 icon을 눌렀지만
이제는 programmer도 icon을 누른다. OOP, component화 등.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 programming이 비슷해지고 있다.
유리알 - icon화하여 분야를 넘나든다.
기술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모두에게 미학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


인문학에서도 user interface가 필요하다.
너무 전문화되어 누군가의 박사학위 논문도 500명 이하의 사람만이 이해할 수가 있다.
지나친 전문화, 분업화.
전문가가 되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릴 수 있는 generalist도 되자.


21세기는 네오 마니얼리즘의 시대이다.
tempest를 보면 마법사가 온갖 마법을 부리고 마지막에
"나의 마법도 이제 끝이다."라고 말하고 마법책을 바다로 던진다.
마니얼리즘은 1600년대 초 중세와 17세기 근대 정신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시대였다.
갈릴레이, 뉴턴도 연금술을 믿었다.


중세 - fantasy, 상상력의 시대
17세기 - 과학의 시대
레오나르도 다빈치 - 화가라기 보다는 designer에 가깝다. 가장 마니얼리즘적 사람이었다. 설계만하도 대부분 만들지는 않았다.
예) 낙하산, 탱크, 비행기


. 화가와 디자이너의 차이
화가 - 현실의 모방, red ocean(과거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킴)
디자이너 - 새로운 것을 설계, 아직 없는 것을 재현, blue ocean(새로운 욕구를 만든다.)


네오마니얼리즘 - 기계의 꿈
요즘은 소설 대신 영화 script를 쓴다.
시 대신 광고 copy를 쓴다.
copy writer는 자본주주의 음유시인이다.
User interface가 필요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청각적이고 촉각적이다.
결코 쓰여지지 않은 것을 읽어야 한다.


통찰력, 글 읽기, 글 쓰기의 방법 - 그림부터 모은다.
비슷한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을 모은다.
그림만 모으면 글 쓰기는 단지 지루한 채워넣기이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text를 읽는 다. 필요한 부분, chapter만 골라 읽는 다. 속독.
그림에 맞는 이론, 이론을 위해 그림을 찾음.
사람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한다.
그것을 훈련하고 버릇으로 만든다.
개별 사건을 이론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 여러사람의 협업과 전문화는 결국 자본 종속을 낳을 것인데 어떻게 보는 가?
물론 국립 미술관은 200억, 삼성의 리움은 2,000억짜리이다.
자본 종속은 피할 수 없다. 비판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민중 미술도 사실은 강남 아줌마들이 다 산다.
자본 종속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가 될 수는 없다.
자본가 대신 관료들이 판칠 것이니까.
물론 사회주의가 되는 과도기에는 모두가 혼란스러워
잠시 돈은 주고 간섭을 안할 수는 있으나 지속될 수 없다.


디자인의 필요에 의해 기술은 발전하게 되어있다.
순수미술도 기술과 적대적이었음. 이제는 기술을 받아들인다.
1930년대 다다이스트, 아방가르드는 기술을 먼저 받아들였다.



참고)
책 - <피상성 예찬> 빌렘 플루소
책 - <디지털 모자이크>
책 - <유리알 유희> 헤르만 헤세
책 - <성찰> 데카르트
책 - 인도적으로 고문하는 방법
소설 - <Tempest>
영화 - <불을 찾아서>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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