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이 지배하는 회사, 효율성 없어 | ||
[일다 2004-10-11 02:12] | ||
상사 퇴근시간 기다리기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는 나보다 사정이 더 열악해서, 매일 야근을 한다. 6시가 정식 퇴근시간이라 하지만, 업무시간에 모든 일을 마친 경우에도 8시에서 9시까지 남아 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일을 끝낸 그 친구가 저녁 시간에 하는 일은 웹 서핑이다. 그는 가끔 푸념을 한다. "왜 나는 업무시간에 일을 다 하고도, 이렇게 상사 퇴근시간을 기다려야 하냐"고.
해야 할 일이 없음에도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은 큰 낭비다. 하지만 우리 노동시장에서 야근은 곧 노동자의 충성도와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직장에서 상사나 경영자들은 업무 시간이 종료하는 것과 맞추어 퇴근하는 부하직원들에 대해 ‘제 시간에 할 일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할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얼마나 불공평하고 비효율적인가? 내일 열심히 일 할 사람들을 업무 외 시간까지 회사에 잡아둠으로써 개개인들은 그만큼 피로감을 느끼고, 조직 차원에서는 업무 처리가 느슨해질 수 밖에 없다. 보통 야근을 하게 되면 주간의 업무는 느슨해지고, 효율이 없다. 야근의 일상화는 곧 회사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낮추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애사심이 없어”
이러한 암묵적인 야근 강요는 기혼 여성노동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대부분의 남성노동자들은 집에 가서 씻고 자면 되지만, 여성노동자들은 집안 일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한다. 자녀가 어리면, 아이를 제 시간에 집으로 데려오는 일도 해야 한다. 물론 이상적인 가정이라면, 아니 제대로 된 가정이라면, 이런 일은 부부가 분담해야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긴 시기상조다.
그 결과 여성노동자들은 야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남성들에 비해 업무시간 내 집중도와 효율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남자직원들이 수시로 밖에 나가 담배 피우며 잡담을 하는 시간에도 여직원들은 자리에서 업무에 열중한다. 그러나 조직은 업무시간 내 제 할 일을 끝내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해 집중도과 효율성을 평가하는 대신, 애사심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쉽게 이야기한다. "여자들은 야근도 안 해" 라고.
이것은 비단 여성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남성노동자들과 업무시간에 일을 제대로 하고, 저녁시간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직장 전반에 깔린 ‘야근에의 찬사’는 곤욕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직원들이 허비하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그 역시 회사에는 큰 손실일 수 밖에 없다.
투명한 경영과 인사 시스템 부재가 문제
사실,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숨 쉴 틈 없이 낮에 일하고, 또 밤에도 일해야 하는 게 싫다는 선배의 말을 듣지 않더라도, IMF 이후 한국의 경제정책은 인건비를 줄이는 것으로만 치닫고 있다. 그 결과, 두 사람이 할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기현상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인이 무슨 초인이라고, 두 사람 몫을 한 사람이 해내야 할까?
많은 기업들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경기는 어렵고 취업률은 낮으니, 더 시켜도 되겠지 하는 생각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 경제가 추락한 이유는 두 사람이 할 일을 세 사람이 해왔기 때문이란 말인가? 절대 아니다. 기업들이 스스로 알고 있고 또 꾸준히 문제제기 되어왔듯이, 투명한 경영 시스템의 부재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평치 못한 경쟁, 그리고 재벌이라는 기이한 기업 지배형태와 평가의 부재 때문이다.
투명한 경영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으니 어디로 돈이 세어나가는지 알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에 대한 곱지 않은 눈은 단지 부에 대한 사람들의 시기심 때문이 아니라, 기업의 성장이 깨끗하지 않아서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는 불공평한 결제 시스템이라든지, 내부 거래 등도 한국의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평가의 부재로 인해, 어디에 어떤 사람을 몇 명 써야 할 것인가 등의 기본적인 인사 시스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기업측은 지금 무조건 줄이고 보자는 식의 인원감축이 기업 성장의 열쇠인 듯 열심이다.
10억 열풍의 이면: 탈출하고 싶은 노동자
그 결과 회사에 남은 사람들은 ‘일중독증’(워커홀릭)에 걸린 양 막대한 업무를 짊어지게 됐다. 실제로 일중독증에 걸린 사람들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중독증은 은근히 지지를 받지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일중독증은 말 그대로 중독이므로 어느 한 시점에서 업무 효율을 높일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의 능력이란 한계가 있고, 어느 순간 맥이 풀리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 그 사람에게서 일에 대한 애정이 완전히 사라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일중독증도 아니면서 일을 많이 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인생 자체가 피곤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10억 열풍, 그 이면에는 돈이면 다 된다는 세태 이외에도 과도한 업무로 직장에 대한 희망이 없어서기도 하다. 직장인이어서 다른 어떤 것도 할 시간이 없다면, 누가 계속 일을 하고자 할까? 계속 일하고 싶고, 계속 일할 환경이 된다면 10억 열풍은 지금만큼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높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나라의 기술 수준은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기술과 경제수준이 올라가면 임금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데, 언제까지 구시대적으로 임금이 높아서 문제라고 분석하는가? 또한 합리적인 경영과 지식 경영의 중요성이 국내외적으로 강조된 게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야근이 애사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노동자를 살리기 위해서, 이젠 달라져야 한다. 업무 환경의 개선은 재량이 아닌 필수다. 이는 또한 노동시장에서 가장 약자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노동자들이 설 자리를 체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일할 맛이 나게 하는 회사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일이 과중하거나 야근을 종용하는 회사에서 노동자들은 회사를 탈출하는 것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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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정춘희 기자 |
2004년 10월 11일 월요일
[기사]야근이 지배하는 회사, 효율성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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