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조직화
부분이 전체속에 들어있으면서 또 전체를 자신속에 가질 때 가능해지는 것이 '자기조직화이다. 이것은 자기의 조건을 자기 스스로 부과한다는 점에서 외부의 강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질서와는 다르다.
레이저이론을 탄생시킨 독일의 물리학자 하켄(H.Haken)은 자기조직 시스템의 간단한 예로서 레이저를 예로 들고 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서로 마주보는 거울이 있는 상자속에 에너지를 부여하면 상자속의 원자의 일부는 이전보다 에너지 준위(準位)가 높은 여기상태가 되어 광자를 방출한다. 광자는 여기된 다른 원자에 충돌하고 거듭 광자가 방출된다. 처음에는 광자들의 파가 서로 간섭하여 복잡한 파형을 만들어 내지만 서로 위상이 달라 상쇄되어버려 방출되는 빛은 약하다. 그러나 점차 에너지의 강도를 높혀 가면 갑자기 어느 시점에서 광자들이 동일한 위상으로 정렬되어 강력한 단일 진동수의 빛을 방출하는데 이것이 레이저 광선이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이것은 여기상태에 있는 많은 분자들의 내부운동에 동조(同調)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켄의 '예속원리'(slaving principle)인데 그는 이것이 실재의 자기조직현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예컨대 두대의 바이올린을 조율하여 한대는 탁자위에 올려두고 다른 한대를 가지고 음악을 연주한다고 생각해 보자. 연주하고 있는 바이올린선과 똑같은 선이 탁자위에 놓인 바이올린에서도 울린다는 것을 확인할 수있다. 다시말해 G선을 연주하면 탁자위에 놓인 바이올린의 G선도 같이 울린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첫째 바이올린에서 발생한 공기의 파동은 두번째 바이올린에 가서 부딪친다. 방출된 음과 똑같이 조율된 두번째 바이올린의 선은 우선적으로 그 파동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있다. 그것은 그 파동의 진동수와 자신의 고유한 진동수가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게속에서 전달되는 에너지는 당연히 가장 최적의 조건상태에서 전달될 수있다. 이러한 동조현상을 공명(共鳴)이라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된 분자속에서 일어나는 광자의 왕복운동도 일정한 주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같은 주기로 변화하는 힘을 밖으로 부터 부여하면 그 힘에 동조해서 진동하도록 되는 것이다. 광자들은 서로 닮아감으로서 동조적으로 진동한다. 이것은 요소들간의 상호작용이다. 그러나 자기조직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데 그 동조상태의 질서는 외부요인에 의해 쉽게 파괴될 수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동조상태에 들어가면 그 체계는 외부요인에 저항하며 그것을 유지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왜일까?
또다른 보기를 들어 설명해 보자. 추의 길이가 같은 구식 괘종시계가 여러개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추는 각기 제멋대로 움직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추들이 마치 함께 묶여서 움직이듯이 일제히 같은 방향,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있을 것이다. (이것은 앞서 논의한 동조현상과 같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의 추를 건드려 다르게 움직이게 해보자. 얼마 안가서 또다시 다른 시게와 리듬을 맞추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이것들은 질서의 교란에 대해 저항하고 계의 일체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구성요소가 많을수록 계는 더 교란시키기 어려운데 제멋대로 움직이는 요소는 그 질서를 강요받는 듯이 보인다. 이것은 요소들의 운동에 의해서 전체 수준의 계가 생성되었지만 이제 역으로 그것에 작용하여 그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하켄에 의하면 자기조직적 계가 출현하는 원리이다.
자기조직은 전체와 부분간의 상호되먹임의 결과이다. 즉 처음에는 어떤 부분이 인접해 있는 다른 부분에 자신을 동조시킴으로 계의 일정한 특성을 만들고 이것이 다시 부분들에 작용함으로써 그 계의 특성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되먹임은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촉매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기촉매성'(autocatalysis)이라고 불린다.
이 하켄의 자기조직화의 원리는 프리고진으로 대표되는 브뤼셀학파(Brusselator)에 와서 더 넓은 범위에서 더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프리고진(I.Prigogine)에 의하면 평형에서 먼 혼돈은 자기조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만일 열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나올 수있다면 많은 시스템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조직화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구조들은 자기조직화의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엔트로피를 산출하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엔트로피를 주변으로 퍼뜨린다고 해서 산일구조(散逸構造;dissipative structure)라고 불린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벨로우소프-자보틴스키(Belousov-Zhabotinsky) 반응'이다.
시료들중 하나의 농도가 임계점까지 증가되면 화학작용은 변환되어 화학적 농도가 마치 화학시계 처럼 규칙적으로 요동하기 시작한다.프리고진은 이 현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제 잠깐 멈추고 이러한 현상이 얼마나 뜻밖이었는가를 강조하고자 한다. 가령 '빨간색'과 '파랑색'의 두 종류의 분자들이 있다고 하자. 분자들의 혼란한 운동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순간에 그릇의 왼쪽 부분에 예를 들어 빨강 분자들이 더 많을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잠시후에는 파랑색 분자들이 더 많이 나타나 보이곤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릇이 '자주색'으로 보이게 될 것이며, 때때로 빨강색이나 또는 빨강색으로 불규칙하게 번쩍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화학시계에서 생기는 것은 이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계가 모두 파랑색이었다가 갑자기 빨강색으로 바뀌고 다시 파랑색으로 바뀐다. 이러한 모든 변화들이 규칙적인 시간간격을 두고 일어나기 때문에 이것은 합치적인 과정이 된다.
수십억개의 분자들의 활동으로 부터 유래되는 이러한 정도의 질서는 믿을 수없는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화학시계들이 관측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러한 과정이 가능하다고 믿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단번에 색을 바꾸기 위하여 분자들은 '교신'할 수있는 방법을 지녀야만 한다. 계는 전체로서 행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화학에서 신경생리학에 이르기 까지 너무나 많은 분야에서 명백하게 중요한 교신이라고 하는 이 중요한 단어를 계속해서 접하게 될 것이다.산일구조들은 교신을 위한 가장 간단한 물리적 기구들 중의 하나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와 같은 형태의 분자가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분자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와같은 화학물질은 자기자신의 촉매가 되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한쪽으로 '붉은' 분자들이 집중되는 우연한 기회가 있으면, 이 '붉은' 분자들은 더 많은 '붉은' 분자들이 생성하도록 촉매역할을 하며 이렇게 생성된 2차적 '붉은' 분자들은 또 새로운 붉은 분자들을 만들기위한 촉매가 된다. 즉 반복점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요컨대 요소와 요소간,요소와 전체간의 자기되먹임의 메카니즘이 자기조직화의 비밀인 것이다.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해 볼 수있다. 비근한 예로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기떼의 경우를 보자. 모기떼들은 분산도 확산도 하지 않으면서 그 형태를 아주 잘 유지한다. 개별적인 모기들의 운동의 무질서한 성격을 고찰해 볼 때 이것은 놀랄만한 점이다. 이것은 요소와 요소간의 상호작용(다른 모기떼로 부터 떨어지지 않으려는 성향)과 집단과 요소간의 상호작용(집단적 운동은 개별 모기의 무질서한 운동을 방해한다)이 결부되어 만들어 지는 질서이다.
무작위적인 움직임이 되먹임을 통해서 복잡한 질서에 이르는 보다 고차원적 과정은 흰개미의 집짓기에서 볼 수있다. 흰개미들의 집짓기에는 아무런 설계도도,그것을 감독할 중앙관료제도도 없다. 처음에 개미들은 흙덩어리를 물어들고 이리저리 옮기면서 무질서하게 돌아다닌다. 이렇게 하면서 다른 개미들을 끌어모으는 페르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방사해서 흙더미에 스며들게 한다. 되는 대로 하다가 어느 곳에 흙이 더 많이 쌓이고,이렇게 되면 그곳이 다른 개미들과 그들이 나르는 흙덩이가 모이는 촛점이 된다. 그것은 더 많은 개미들을 끌어들이고 개미의 행동은 이제 그 구조에 구속되게 된다.
인간사회에서 옷의 패션의 변화도 이러한 자기되먹임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패션을 만들어 내는 고차적인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유도하지만 그것의 성공여부는 자신도 알 수없다. 그것은 뒤에 논의하겠지만 자기되먹임이 가지는 비선형성으로 해서 고도로 불확정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임의의 소수가 그 패션에 매력을 느끼고-그 패션이 자기의 체형에 어울렸을지 모른다-입기 시작한다. 이것이 유행을 탈 경우는 자기되먹임이 성공하는 경우다. 갑자기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증가하고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자기되먹임이 시작되면서 그 유행은 발산적으로 퍼져나간다. 이제 이 패션은 개별적 사람들에게 선호의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옷의 양식을 구속하는 강제성을 가진다. 이것은 전체가 요소에 가하는 되먹임이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패션이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닮아간다. 요소들의 교란은 항상 있지만 그것은 신속하게 저지되고 계의 평형상태는 유지된다. 예컨대 이 유행에 못마땅한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럴경우 그는 '촌스럽다'는 눈총을 받게된다. 그는 촌스러움을 면하기위해 그 강제에 복종한다. 그는 자기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울며 겨자먹기로 입게된다. 또는 그것에 무관심한 사람도 기성복 시장에 그 스타일의 옷외에는 구할 수없어 그 옷을 입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그 계를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부지불식중에 하고 있다. "
위에서 얘기하는 화학시계 현상은 확률론적으로 계산해보면 거의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자기조직화에 의해 실제로 일어난다. 즉 확률론을 대입할 수 없는 곳에 확률론을 대입해서 생긴 오류이다.
이와같은 오류가 진화론의 비판에서도 나타난다.
원소의 특수한 전자배치로 인해 단순히 확률론적인 우연한 결합이 아닌 경향성을 가진 화학결합이 성립된다. 확률론의 계산에서는 이러한 화학적인 결합의 경향성은 전혀고려되지 않았다. 또한 원자들, 분자들간의 상호작용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런 확률론 계산은 잘못된 결론으로 이끈다. 현재의 수학수준으로서는 세 개의 행성간의 상호작용도 계산하지 못한다. 이런 계산능력으로 수많은 복잡한 분자들의 상호작용을 계산한다는 생각자체가 오만의 극치이다.
새로운 진화 패러다임 : 자기조직의 원리
환원주의에 근거한 기계론적 생명관, 다원(Darwin, C.)의 자연 도태설, 유전자풀의 평형이 깨어질 때 새로운 종으로 진화한다는 신다원설(New-Darwinism)만으로는 물질에서 생명으로의 진화와 하등생물에서 고등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많은 한계점을 노출하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버트란프-프리고진-얀츠에 의해 주창된 새로운 진화 패러다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패러다임은 시스템즈 생명관과 자기조직의 원리(Self-orgarizing Principle)로 특정 지어진다. 자기조직의 원리에서 생명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하면서 외부적 요인(예로 천재지변, 돌연변이, 지역적 격리)에 의해 그 구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내부적 자기갱신(Self-Renewal)의 능력 (생명체가 그 구성요소들을 계속해서 갱신시키고 재순환시키면서도 그 전체적 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능력)과 자기초월(Self-Transcendeny)의 능력(스스로 배우고 발전시키는 진화과정에서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창조적으로 초월하는 능력)에 따라 자기조직 되어가는 살아있는 시스템즈로 본다.
살아있는 시스템즈의 자기조직의 원리는 일리야 프리고진의 비평형 열역학(Nonequilibrium Thermodynamics)에서 밝혀진 소산구조의 존재와 방계(Open System)에서의 대칭성 파괴에 따른 자기선택성에 기초하여 정립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평형상태 근처에서의 비대칭성은 다시 평형상태로 돌아가거나 외부로 가장 낮은 엔트로피를 내보내면서 안정화되어 정상상태를 이루지만 평형 상태에서 멀리 떨어진 비대칭성은 그것이 흩어지고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구조와 질서가 발생하여 안정화된다고 한다. 이때 새롭게 탄생한 질서와 구조를 비대칭성이 흩어지는 과정 중에서 발생한 구조하여 소산구조(所産構造)라 명명하였다. 대표적인 소산구조로는 강제대류의 난류구조와 자연대류의 버나드 격자(Benard Cell)가 있으며,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개방계에서는 여러개의 소산구조가 화학반응중에 생기게 되고 그 중의 하나는 자동촉매(Auto-jcatalysis) 역할을 감당하게 되어 반응의 선형성(Linearity)이 깨어지고 분기(Bifurcation)에 의해 새로운 소산구조가 탄생하거나 소멸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때 분기에 의한 다른 소산구조로의 진화는 자율적이고 자기 선택적인 성질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기 선택성은 비평형 상태에서 예민하게 작용하는 외력장(外力場) 즉 중력장의 영향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에리히 얀츠는 소산구조와 대칭성 파괴에 따른 소산구조의 자기 선택적 변화를 기초로하여 무생물에서 생명체로 진화, 즉 화학진화를 소산구조, 자기촉매과정, 자율적 선택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이러한 과정들을 하이퍼 사이클(Hyper-cycle)로 규정하였다. 또 거시세계의 진화를 설명하기 위해 공진화 개념을 도입하여 상호보완적 통신에 의해 자기초월적 진화를 설명하였다. 이러한 공진화에서는 미시세계의 진화와는 달리 순환성이 깨진 상태에서 자기 선택적 경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통신에 의해 새로운 구조를 창조한다고 하여 이를 울트라 사이클(Ultra-cycle)로 부른다. 에리히 얀츠는 세단계의 진화과정을 소개하는데 그것들은 앞서말한 화학진화 단계의 하이퍼 사이클, 개체에서 족(族)으로의 진화과정인 울트라 사이클, 그리고 이러한 진화과정의 진화를 통해 더 높은 수준을 창조하면서 진화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진화과정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기조직에 의한 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참고 : 자기조직화란 '혼돈으로부터의 질서'란 책을 쓴 일리야 프리고진(노벨 화학상 수상자)의 무산구조[산일구조, 소산구조]이론(노벨상 수상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간단히 얘기하면 열린계에서 충분한 에너지가 존재할 때 무질서로부터 질서가 생긴다는 것으로 무생물에서 생물이 생길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설명은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현상태를 유지하다가 환경격변에 의해 종진화가 발생한다는 종진화설을 열역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 메카니즘은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가 제시하는 패러다임의 변환과도 유사하다. 하나의 과학적인 패러다임이 정착되면 이 패러다임에 반하는 조그만 증거들은 무시된다. 그러다가 과학의 발전에 따라 기존의 패러다임에 반하는 증거들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되면 어느 시점에서 완전히 뒤집혀 새로운 증거에 기초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즉 패러다임의 전환도 짧은 시간에 격렬하게 일어나며 안정적인 시기가 훨씬 길다는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