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의 유전정보가 담긴 디옥시리보핵산(DNA) 의 이중나선구조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 박사가 미국 캘리포니 아에서 사망했다고 영국학술원이 29일 발표했다. 향년 88세.
크릭 박사가 근무했던 캘리포니아 라 홀라 소재 소크연구소도 크릭 박사가 샌디 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손턴병원에서 결장암 투병 끝에 28일 사망했다고 밝혔다.
소크연구소 소장인 리처드 머비는 크릭 박사는 역사상 가장 훌륭하고 영향력 있 는 과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1916년 잉글랜드 노샘프턴 태생으로 런던 유니버시티컬리지에서 물리학을 전공 한 크릭 박사는 36세인 1953년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에서 24세인 제임스 왓 슨 박사와 함께 DNA 이중나선형구조 발견했고 이 공로로 1962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크릭 박사는 발견 당시 케임브리지의 한 술집으로 가 자신과 왓슨이 "생명의 비 밀을 풀었다"고 말했으나 몇명만 "흥미롭다"고 말했을 뿐 이 발견이 확고하게 받아 들여지는 데는 이후 몇 년이 걸렸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발견이 끼친 영향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모든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발견은 생명공학산업의 기초가 됐고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큰 토마토를 만들고 의사들은 유전자치료법을 연구하고 경찰은 DNA 증거로 범죄를 해결한다.
생명공학은 연간 3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해 160여 가지의 약과 백신을 생산, 유 방암에서 당뇨병에 이르는 다양한 질병 치료에 기여하고 있으며 농업 부문에서는 지 난해 18개국 농민 700만명이 유전자조작 작물을 재배했다.
이들은 DNA가 꼬인 사다리형태의 이중나선구조로 돼 있음을 밝혀냈으며 이 사다 리의 가로대에 해당하는 부분은 아데닌(A)과 티민(T), 시토신(C)과 구아닌(G) 등 4 가지 염기가 쌍을 이루고 있고 결합순서 속에 유전정보가 저장된다.
크릭 박사는 노벨상 수상 후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인 왓슨과 달리 인터뷰를 매 우 꺼리는 등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싫어했으나 그는 이에 대해 자신이 반사회적 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1977년 케임브리지대에서 미국 소크연구소로 자리를 옮겼으며 다른 과학자 들과 달리 실험에 몰입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책을 읽거나 태평양을 바 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았다.
크릭과 왓스의 DNA 이중나선구조 규명은 모리스 윌킨스와 여성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연구에서 큰 도움을 받았으며 윌킨스는 이를 인정받아 함께 노벨상을 받 았으나 프랭클린은 1958년 사망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유전공학 연구로 1980년대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스탠퍼드대의 폴 버그 박사는 " 크릭 박사의 공로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고 말했으며 영국학술원장 메이 경은 "클릭 박사의 업적은 우리를 분자생물학의 황금기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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