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험을 위해 태어난 machine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부터 매 해 수학 경시대회 10개, 컴퓨터 대회 10개 정도 나갔던 것 같다.
매달 경시대회라는 시험이 있었다.
학원에서 주최하는 시험부터 교육청, 대학 등..
항상 같은 문제를 또 풀고 또 풀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말이다.
시험이 있는 기간에는 9시간동안 매일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매달 산수반에서 또 시험을 봤는 데, 하나 틀릴 때마다 매를 맞았다.
친구들은 모두 경쟁상대에 불과했다. 친구들보다 못보면 배로 맞았다.
(1~4등까지는 등수의 제곱 정도로..)
시험 스타일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아침 5시에 일어나 6시에 차를 타고 4시간 뒤에 서울에서 내린다.
후다닥 밥을 먹고 1,000명이 2시간 동안 예선을 본다.
떨어진 사람은 그냥 가고 남은 50명이 다시 본선을 2시간 본다.
1등이 동점이면 동점자 까리 시험을 다시 본다.
시간은 20분, 문제는 200문제.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검산을 할 시간이나 옆을 볼 시간도 없다.
최대한 풀어도 50문제를 넘게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조건 빨리 푸는 사람이 이긴다.
또 어떤 시험은 death match 같은 시험도 있다.
1분에 한 문제씩 나눠준다. 1분이 지나면 그 문제지는 걷어가고 다음 문제를 준다.
그런식으로 1분 풀고 1분 쉬고를 5번 반복한다.
하나라도 틀리면 탈락.
다음 주에 남은 사람을 가지고 또 반복한다.
그렇게 5~10번을 반복하면 한 학교에 3명 정도 살아남는 다.
서울에 모여서 마지막 3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반복
친구들이 빨리 떨어지고 나는 하나도 안 틀려야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엄청난 긴장이 몰려온다. 하나라도 틀리면 탈락이다. 낙오자다. 집에 가야 한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니 집에 상장이 한 50~60장은 모였던 것 같다.
그런 종이를 그리 많이 모아서 뭐에 쓰려고 했는 지 모르겠다.
부모님이나 학교나 학원 선생님은 자랑스러워 했지만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다음번에 실수로 하나 틀리면 어떻하지?'
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중학교에 갔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는 달라서 하루 종일 산수문제만 풀 수는 없었다.
그냥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매일 아침 한자를 2~10개씩 외워야 했다. 못 외우면 몽둥이.
영어 단어도 비슷한 식이었다. 일주일에 10페이지 or 회초리.
학원은 더 심했다.
치맛바람 센 아주머니들이 자식들을 모아서 넣어놓은 반이었다.
시간 1시간, 영어 단어 200개, 틀리면 해병대 출신이라고 우기는 선생이 와서 팬다.
암기는 실력이 부족해서 매일 맞았다.
학원이 가기 싫어 울어도보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없었다.
"다 너를 위한 거야."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은 대부분 의대에 갔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시험 중독이었다.
그들은 시험을 즐겼다.
그들은 어떤 문제봐도 "왜?"라고 묻지 않았다.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푸는 지는 다 알고 있었다.
지금도 열심히 대학에서 시험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4년만 더 하면 이 나라의 기득권층이 될 것이다.
지금도 마음이 불안하거나 초조해지면 그 때가 떠오른다.
전쟁증후군, 트라우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성 위장병도 경시대회에 보름마다 나가던 그 때 생겼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도 그 때부터 였다.
친구가 경쟁자로 보인것도 그 때부터 였다.
영화 배틀로얄 (섬에서 친구를 다 죽여야 하는 영화)이나
영화 쉬리 같은 곳의 특수부대 훈련 장면을 보면 그 때 생각이 난다.
(가장 빨리 총을 조립한 사람이 옆 사람의 머리를 쏘는..)
과연 나는 사람일까? 계산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들은 나를 칭찬할 때.
"컴퓨터 같은 녀석"이라고 말했다.
그건 진정 칭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을 까?
수요일에 일어 강의 시험이 있는 데,
답글삭제불안해져서 생각해보니
이런 과거 때문인 것 같다.
한국 사람 모두가 시험에 불안감이 있지만 내 경우를 구체화 해보면 위와 같다.
회사 인사고과나 내 인생에 전혀 이득이나 손해가 되지 않는 단지, 학원에서 보는 시험일 뿐인데도
왜 이리 불안한지 생각해봤다.
내가 0점을 받든 100점을 받듣 아무 상관없는 시험인데도, 왜 이리 불안한지, 내가 보기 싫으면 보지 않아도 되는 데, 왜 이리 불안한지, 생각해봤다.
과거의 시험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 같다.
다시는 이런 시험들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답글삭제다시는 이런 식의 공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학의 시험들은 그나마 낫다.
시간도 많이 주는 편이고 재수강이라는 구제책도 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 말처럼 내가 학부 졸업후에 취직한다면 영원히 다시 보지 않아도 된다.
고통스러웠지만 저런 시험들에 익숙해질 무렵 중학교 3학년이 됐다.
답글삭제논술이라는 이상한 시험이 생겼다.
산수도 아니고 암기도 아닌 이상한 시험이었다.
등수를 차례대로 매길 수 없는 모호한 시험이었다.
어떻게 등수를 매길 수 없는 이런 것이 시험이 될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음악, 미술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누구의 그림은 A이고 누구는 B일까?
모두가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그린 것인데.
나는 그런 과목을 잘 하지 못했다.
나는 암기 능력이 부족한 메모리가 작고 계산 속도만 빠른 계산기였다.
산수도 이상해 졌다. 과목명이 수학으로 바뀌더니, 증명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쉬운 단계에서는 잘 적응했다. 암기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암기보다는 쉬웠고 계산보다는 어려웠다.
점점 복잡해지면서 쉽게 풀 수가 없어졌다.
나는 1분안에 답이 생각나지 않는 문제는 어색했다.
증명 문제는 한 문제에 무려 1시간이나 주어졌다.
그 시간동안 도대체 뭘해야 할지 몰랐다.
긴장은 줄었지만 당황해버렸다.
중 3 때까지 내가 생각하는 수학자는 계산기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