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법의학의 태두 문국진 선생이 일본 법의학자 우에노 마사히코와 나눈 대담집을 보면, 주검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시각은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는 사람의 주검을 시체(屍體), 동물의 주검을 사체(死體)라고 엄격히 구분해 부르지만, 일본은 동물과 사람 모두 사체로 부른다. 한국인은 ‘집에서 눈을 감아야 한다’는 생각에 치료를 받다가도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환자를 집으로 옮기지만, 일본에서는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재수가 없다’ 하여 오히려 병원으로 옮긴다. 화장과 매장, 혹은 장기 기증 등 자신의 주검을 마무리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민족마다 제각각 다르다. 내가 요즘 늘 손에 끼고 다니는 책은 메리 로치의 매혹적인 에세이 <스티프>(권루시안 옮김·파라북스 펴냄·1만4500원)다. ‘경직되다’는 뜻인 스티프는 사후 경직이 일어난 시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체들의 삶’이라는 역설적인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우리가 정말 몰랐던 시체들의 역사가 담겨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임사 체험>이 죽음 뒤 영혼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죽음 후 영혼이 떠난 육신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를 그리고 있다.
시체 해부가 처음부터 자연스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거란 사실은 쉽게 짐작이 가지만, 19세기까지 영국에서는 돼지 한 마리를 해치면 교수형이지만 사람을 죽이면 교수형 후에 해부하도록 했을 정도로 터부시했다. 해부용 시체가 부족한 시절에는 묘지를 파헤쳐 시신을 꺼내거나 살아있는 죄수를 산 채로 해부하기도 했다. 시체 사냥꾼들이 빈민들을 살해해 해부용 시체로 팔아 넘긴 사건이 불과 10년 전까지도 자행됐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정도다.
오로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 연장을 위해 시체들이 남몰래 겪어야만 했던 학대는 눈물겹기까지 하다. 차량의 안전장치 개발을 위한 자동차 충돌실험에 테스트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안전띠를 시험하기 위해 희생된 시체 수를 세어보면 시체 한 구당 매년 8500명의 사람 목숨을 구한 꼴이라고 한다. 또 에어백 실험에 사용된 시체들은 1구당 매년 147명의 인명을 구하고 있다고 하니, 산 자들이 죽은 자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새로 개발한 총기의 유효사거리를 측정할 때나, 방탄복 신제품의 생존 정도를 측정할 때, 그리고 항공기 사고 원인을 규명할 때도 시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개발된 인간적인() 교수형 장치 기요틴(단두대)의 등장으로, 또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엽기적인 실험에 사용되었는가! 이 책의 참으로 놀라운 점은 시체라는 끔찍한 주제를 전혀 혐오스럽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나만의 행성’이라는 재기발랄한 에세이를 연재하는 메리 로취의 익살스러우면서 유머러스한 문장 덕분일 게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혼자놀이의 진수’ 시체놀이. 이제 시체놀이 함부로 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유익한 사람이었느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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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 실습하는 의대생들에게 권해줄까 생각 중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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