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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Diaspora]
팔레스타인 외역(外域)에 살면서 유대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던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가리키는 말.
디아스포라(Diaspora) 이전에도 유대인은 이집트·아랍·인도·이탈리아·에스파냐 등지를 유랑하고 있었다. 4세기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공인 및 국교화 이후의 그리스도교도는 유대인과의 통혼·농작물 분배 등을 금지당하였다.
그러나 중세 전기에 유대인은 지중해 연안 제(諸)도시에서 상업교역에 종사하면서 점차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다. 당시는 가혹한 박해를 받는 일 없이 그리스도교도나 이슬람교도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십자군 이후 그리스도교도는 이교도와의 전쟁을 통하여 유대인을 이교도로 의식하고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유대인은 그 무렵부터 자연경제의 해체와 더불어 대두한 상업자본과 공업생산의 주류에서 밀려났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도에게 이자취득이 금지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여 고리대금·전당포·환전상 또는 일반적으로 기피하는 고물상 등에 종사하는 한편, 군주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왕가의 집사(執事)나 징세인(徵稅人)이 되어 중세(重稅)를 바쳤다. 그러는 사이에 유럽 각지로 계속 퍼져 나가 중세 말기에는 에스파냐와 폴란드가 유대인의 2대 근거지가 되었다.
유대인은 대개 도시에서 살았으나 고유문화의 보호를 위하여 그리스도교도와는 지리적 ·사회적으로 격리된 지역에 정착하였는데, 위정자는 이를 이용하여 그들을 게토(ghetto)라고 하는 강제격리지구에 몰아넣었다.
게토의 발생은 15세기 또는 16세기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유대인은 17세기 말 각지의 위정자로부터 추방되거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改宗)이 강요되었으며, 시민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유럽 경제활동의 중심이 남에서 북서유럽으로 옮겨지고, 자본주의 및 근대통일국가가 성립 ·발전함에 따라 군주 ·군대 ·교회 ·권력자의 어용상인 ·금융가로서의 유대인의 존재는 소수이기는 하였어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예로부터 익혀 온 높은 이동성과 환경에 대한 적응성 ·융통성 때문에 근대국가의 장벽을 초월하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그들은 결코 경제활동의 중추를 점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어도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또 그 일로 하여 유대인 박해가 가중되었다.
즉, 그들은 농민에게는 농민을 착취하는 도시의 대표로서, 도시의 중산계층에게는 직접 경쟁상대자로서, 몰락하는 귀족에게는 급진적 사상의 소유자로서, 일부 노동자계층에게는 유력한 자본가로서 백안시되었다. 이러한 비난이 실제와 부합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표면화되고 있던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적 대립의 배출구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대상작용(代償作用)이 외래자 ·이교도인데다가 중세 이래 유대인의 직업적인 상황(징세인 ·고리대금 등) 등과 얽혀서 박해는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가장 큰 표출이 19세기 러시아에서의 대학살과 20세기 나치스에 의한 대학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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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을 보면
이제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멕시칸, 인도인 등.. 많은 국가에서 유태인들처럼 디아스포라를 권장하고 있다.
특히 그들은 선진국이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미국에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고국의 번영에 힘쓴다.
그래서 국가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고 세계 여러 곳에 자신의 나라를 넓히는 셈이다.
신라의 '신라방', 한국의 '코리아타운', 중국의 '차이나타운',
멕시코인들의 캘리포니아 진출, 쿠바인의 마이애미 진출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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