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영화]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글/최세희(downouter@hanmail.net)

샐리(<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시큰둥한 경구를 빌면 '자살률도 높다는' 크리스마스에는 무조건 화해하고 사랑하고 볼 일이다. 리처드 커티스는 <러브 액츄얼리>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연말' 영화, 혹은 크리스마스 영화로서 놀랍지 않은 어젠다이다. 마이크 마이어스가 음험한 고양이 분장을 하고 나와 어린 오누이의 집을 온통 '토이 팩토리'로 만들어 버리는 <더 캣>이나 차태현이 김선아를 얻기 위해 조폭과 맞서는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도 마찬가지. <더 캣>이 마이어스의 희번득한 고양이 분장 뒤로 헐리웃 식의 간지러운 가족주의를 설파하고,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가 얼마간 낙오한 이들의 좌충우돌 사랑 쟁탈기를 그리고 있다면 <러브 액츄얼리>는 보다 쿨하고 개인적인 관점에서 '애정 만세'를 외친다.





스코어 리뷰를 쓰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면서 이 영화를 먼저 본 지인의 조언(?)이 떠올랐다. 말인즉슨 "연인이 없는 사람은 보면서 약 오를거"라는 것이다. 버티고 본 바에 의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러브 액츄얼리>에는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알아서 골라먹을' 여유를 보여준다. <네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 의 각본가로 전 세계 영화 시장에 '영국식 유머'를 브랜드화한 커티스는 감독 입봉작인 <러브 액츄얼리>에서 그의 각본을 영화화한 여타 감독을 능가하는 '캐스팅 파워'를 선보인다. 휴 그랜트, 엠마 톰슨, 리암 니슨, 콜린 퍼스, 빌리 밥 쏜튼, 앨런 릭맨, 로라 리니, 로완 앳킨스, 빌 나이히, 카이라 나이틀리, 데니스 리처드 등등, 내로라하는 영미 스타들을 대거 출동시킨 데에는 '커리어 과시' 이상의 의도가 있다. 관객들을 위한 '종합 선물 세트'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했겠지만 그 보다는 인물군상의 '연말' 일상을 보다 '편차 있게' 그리고자 한 바가 더 크다.

그 편차는 열 개의 요철 같은 사랑들로 형상화된다. 점잖은 유부남 편집장(앨런 릭맨)은 직속 부하의 유혹에 흔들리고, 그것을 우연히 목도하게 된 부인(엠마 톰슨)은 회한에 잠긴다. 토니 블레어를 제치고 올라온 수상(휴 그랜트)은 수더분한 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에게 끌리지만 정무의 바리케이트에 가로막혀 제대로 고백할 수도 없다. 소설가 제이미(콜린 퍼스)는 실연의 아픔을 씻어준 포르투갈 출신의 가정부 오렐리아를 사랑하지만 언어 장애 때문에 고백할 수 없다. 반평생을 호색한에 난봉꾼으로 살았던 록커 빌리 맥(빌 나이히)은 재림이랍시고 크리스마스 캐롤 리메이크를 발표하지만 프로모션 차 나간 방송마다 자기와 뚱보 매니저의 한심한 노년을 자조적으로 놀려먹기만 한다...기타 등등, 기타 등등. 커티스는 담백하고 재기발랄한 연출로 스토리에 인물의 포화 상태를 극복해 낸다. 중요한 것은 인물 모두를 절대적 해피 엔딩으로 맺어주지 않는다는 것. 장애자 오빠 때문에 수년 간 짝사랑해 온 동료와 서먹서먹해지는 사라(로라 리니)나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지만 외사랑으로 접어야 하는 마크(앤드류 링컨), 남편의 부정을 가족주의로 극복하기로 마음먹는 카렌(엠마 톰슨)등은 사랑의 씁쓸한 이면을 감내해야 하는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올해에도 어김없는 '극기의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팔자의 관객에겐 커티스의 '응달 러브 스토리'가 역설적으로 더 정겨울 것이다.




개인적으로 <러브 액츄얼리>의 캐릭터들 중 가장 멋졌던 캐릭터는 퇴락한 파락호 록커 빌리 맥이었다. 소위 '영국식 유머'의 진수를 보여주는 빌리 맥은 자신의 허랑방탕한 과거를 그 누구보다도 신랄하게 자조하지만 반성하기 보다는 그를 조소하는 대상수에 대한 똑같은 비아냥의 동력원으로 치환한다. 미디어도, 라이벌도, 호불호로 들끓는 대중도 제압할 수 없는 전방위적 위악이고, 시쳇말이 된지 오래지만 '록 스피릿'의 한 전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클리셰 클래식을 크리스마스 버전으로 바꾸어 부르는 퇴락의 극치에서도 그는 구질구질하게 하소연하지 않는다. 대신, 팔코(Falco)의 뮤비를 연상케 하는 극악무도한 캐롤 뮤비에서 급기야 올 누드를 선보이기까지 한다. 참 유쾌했다. 꽤 괜찮은 러브 테마 컴필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 <러브 액츄얼리>의 스코어 중 빌 나이히가 부르는 "Christmas is All Around"가 가장 좋았던 건 컨텍스트적 재미 때문이리라. <러브 액츄얼리>의 스코어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일렉트로니카 뮤지션인 크레이그 암스트롱(Craig Armstrong)이 맡았다. 그의 역량은 영국의 걸출한 일렉트로니카 밴드 매시브 어택과 유투와 마돈나와의 공조부터, <미션 임파서블> <로미오와 줄리엣> <물랑 루즈>등에서 이미 검증되고 남은 터, 그의 사운드 스케이프 제조 매뉴얼에서 볼 때에 소품 격인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맞춤형' 프로듀서로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빙 크로스비나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의 캐롤집에서 보다 색다른 크리스마스 컴필레이션을 원한다면 꽤나 근사하고 세련된 캐롤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라 존스, 에바 캐시디, 와이클레프 쟝, 비치 보이즈, 오티스 레딩의 개성 만점의 캐롤집은 일상적으로 만나기 힘든 컨셉 앨범이니 말이다.




Some lovable comments, actually....
1. Jump (for my love) - Girls Aloud 1980년대를 풍미했던 소울 팝 트리오였던 '포인터 시스터즈(Ponter Sisters)'의 클래식 히트 넘버를 일곱 명의 걸 그룹인 걸즈 얼라우드가 리메이크하고 있다. 주제는 '사랑하려면 용감하게 뛰어들라(jump)'. 열 명의 잠재적 커플들을 위한 진군가(?)인 셈.

2. Christmas Is All Around - Billy Mack영화 첫 장면을 장식하는 코믹 뮤비 컷. 영국 팝 그룹의 웻웻웻(Wet Wet Wet)의 1995년 앨범인 [Picture This]의 수록곡이자 그해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한 "Love Is All Around"를 '발칙하게' 리메이크하고 있다. 휘청휘청 노회했지만 악동 끼가 여전한 빌리 맥의 창법이 일품. 영화 속에서 빌리의 최대 라이벌로 등장하는 록 그룹 블루는 실제에서도 라이벌이었고 둘이 크리스마스 싱글을 놓고 1위를 다퉜다는 후일담은 믿거나 말거나.

3. Turn Me On - Norah Jones작년 그래미를 휩쓸었던 노라 존스의 [Come Away With Me]에 수록된 재즈 블루스 넘버.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앨런 릭맨이 회사 송년회 파티에서 직속 비서와 춤을 출 때 고즈넉하게 흘러 나왔다. 다음 곡으로, 보다 포크 쪽으로 기운 멋진 에바 캐시디의 "Song Bird"도 비슷한 무드를 선사한다.

10. Both Sides Now - Joni Michell 남편(앨런 릭맨)의 옷주머니에서 하트 금목걸이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카렌(엠마 톰슨). 그러나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가 받는 선물은 목걸이가 아닌 '조니 미첼'의 씨디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침실로 달려가 오열할 때 나오는 음악. "이제는 두 갈래의 길로 갈라져 버렸네"라는 미첼의 스산한 목소리가 쓸쓸하다.

11. White Christmas - Otis Redding
1960년대, 가장 위대했던 소울 뮤지션이자 흑인 아티스트였던 오티스 레딩이 어딘가 핍진하게 쉬어있는 목소리로 '하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노라 노래하는 걸 들으면 눅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의 아이덴티티 자체가 이 노래를 흑인다운 '위장의 정치학'으로 상승시키고 있다. May all your christmas is WHITE.....

12. Take Me As I Am - Wyclef Jean (featuring. Sharissa)
알앤비, 이스트코스트 랩의 걸출한 아티스트 와이클레프 쟝의 2003년 앨범 [Preacher's Son]의 수록곡으로 레게의 '서글픈 그루브'와 쿨한 일렉트로니카의 풍류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밥 말리에 젖줄을 댄 그들의 영적인(spiritual) 여유가 일품이다.

13.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 Olivia Olson
머라이어 캐리의 1994년 크리스마스 특별 앨범 [Merry Christmas]의 히트 넘버를 올리비아 올슨이 리메이크했다. 영화에서는 대니얼(리암 니슨)의 의붓 아들 샘(토마스 생스터)이 사랑하는 스쿨 퀸인 조애너 역을 맡은 올리비아 올슨이 송년 학예회에서 직접 부른다. 닳고 닳은 머라이어 캐리의 바이브레이션보다 신동 올슨의 그것이 훨씬 걸출하다는 점은 부연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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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크리스마스에 남자들과 함께 본 영화군..(암울..)
아무튼 재미있는 영화다. O.S.T도 좋다.
그리고 영국애들은 부사 "actually", "It's quite ~~"를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말끝마다 영국식 억양으로 'actually'라고 말한다.(특히 휴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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