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3일 수요일

[인물]주철환 PD



** 프로필 **

* 이름 : 주철환 (朱哲煥)

* 소속그룹 :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담당과목 : 이야기 구성실습 / 미디어 글읽기와 쓰기 / TV제작실습 / 매스컴과 사회

* 연구실 : 이화여대 인문관 525호

* 전화 : 02)3277-3550

* E-mail : chjoo@mm.ewha.ac.kr

* 분야 : 프로듀서, 교수

* 생년월일 : 1955년 5월 29일

* 출생지 : 경남 마산시

* 좋아하는 것 :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 가는 것

* 싫어하는 것 :남을 깎아내리는 비방이나 험담이 들리는 것

* 좌우명 : 재미있게 살고 의미있게 죽자

* 학력 :
1984년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입학
1978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1980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1986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 군대 : 카투사 출신 (1980년 7월 입대 ~ 1982년 제대)

* 주요작품 : 퀴즈 아카데미,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 TV청년내각,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테마게임, 음악캠프, MBC대학가요제, 21세기대중문화대장정, 민족통일음악회(평양공연) 연출

* 경력 및 활동 :
1983 - MBC 입사
1983~1989 - 고려대학교 강사
1983~2000.2 - MBC TV 프로듀서
1997 -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사
1997.04 - MBC TV제작국 예능1 팀장
1998 - 서울예전 방송연예과 강사
1999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사
1999.10 - MBC 편성실 편성기획부 부장직대
2000.01 ~ 現 -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MBC 예능국 차장
2000 ~ 現 - EBS FM <주철환이 만나는 세상> 진행

* 수상경력 :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퀴즈 아카데미' (1990)
한국방송대상 우수작품상 '우정의 무대' (1991)

* 논문 및 저서 :
퀴즈 아카데미 1 (까치,1988)
퀴즈 아카데미 2 (까치,1990)
주철환 프로듀서의 숨은 노래찾기 (문음사,1991)
PD는 마지막에 웃는다 (문학사상사, 1992)
30초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 (자작나무,1994)
상자속의 행복한 바보 (1995)
사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 (1998)
새로운 사람들 (1998)
시간을 디자인하라 (사람 in,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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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연출가의 세계

MBC 가이드에 연재했던 내용들입니다. 여러 그림들이 함께 준비되어 있는데, 이 그림들 위로 마우스 포인터를 올려놓고 잠시 기다리시면 그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글을 읽은 뒤 소감이나 하실 말씀이 있는 분은 이곳을 눌러 주십시오
















2001/08/28 (09:30) from 211.211.154.129' of 211.211.154.129' Article Number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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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연출가 주철환 "당의정론과 교양주의"





언어의 조탁, 음악적 식견, 역사적 안목은 주철환 프로듀서의 프로그램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체이다. 굵은 스케일보다는 작고 아름다움 세계의 구현, 순박한 것이나 때묻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 부여 등은 그가 지닌 연출 스타일, 말하자면 새로움의 추구, 대중적인 감각, 교양주의란 바탕 위에서 꽃을 피워 그를 방송계의 마이더스로 떠오르게 했다.언젠가는 이런 일이 올 줄 알았다. 필자가 주철환 프로듀서를 알게 된 이후로,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젊은 날의 한때를 그와 더불어 한지붕 밑에서 살았던 이래로, 그가 당대의 프로듀서로 각광을 받게 된 이후로, 그리고 이처럼「MBC 가이드」에서 <연출가의 세계>를 연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주철환 프로듀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때 필경 필자에게 그 일이 닥칠 줄을 운명적으로 짐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필자에게 만만찮은 과업이 될 것 또한 예견했다.

그것이 만만찮은 까닭은 다른 데에 있지 낳다. 가장 잘 아는(또는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객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상상이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로 손꼽아 손색이 없는 한 연출가의 세계를 적절히 분석하고 검증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름지기 인간의 행복은 '시도'에 있다. 주철환 프로듀서의 삶과 작품을 충실히 저작(詛嚼)하는 것만으로도 필자에겐 과분한(?) 행복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

<연출가의 세계>를 애독해온 독자 중에는 주철환 프로듀서가 이 난에 등장한 것을 어쩌면 뜻밖의 일로 받아들일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연출가의 세계>에는 박철, 정문수, 전우중 등 당대의 명망있는-그리고 중후한-연출가들이나 고석만, 장수봉, 김승수, 신종인, 송창의 등 일정한 연륜을 바탕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관록의 연출가들이 지면을 빛냈기 때문이다.

연부역강하기 그지없는 주철환 프로듀서가 이 난에 등장하는 사실이  그 자신에게도 버거운 일일 뿐만 아니라 앞서간 선배들에게도 누를 끼치는 일이 되는 건 아닌가. 아직은 그의 그에 대한 판단은(<연출가의 세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프로듀서에 대한 특정한 가치판단의 소산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유보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연출 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그가 연출한 프로그램을 본 사람이라면 주철환 프로듀서가 이처럼 <연출가의 세계>에 오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님에 동의 할 줄 믿는다. '연출가의 세계'는 물리적인 연륜이나 허명(虛名)의 세계가 아니며 진실로 작품으로 말하는 진정한 창작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해온 발언의 내용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로 하여금 '연출가의 세계'에 오르도록 만들고 있는가.

주철환 프로듀서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그만의 새로운 세계가 있다. 무릇 프로듀서치고 '무언가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다른 것과 구별되려고 하고 새로워지려 하는 그의 노력은 집요하고 철저하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했던가. 새내기 시절「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을 맡았을 때 그는 백화점식, 깡통식 나열 프로그램 방식을 배제하고 주제별 접근을 시도했다.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고 그날의 프로그램을 종합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그 첫 주제는 '아버지'. 당시의 신인 탤런트 박상원과 박순애를 기용한 영상 음악 <아버지>를 비롯, 현장 취재 <서울의 밤 9시,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등으로 이어진 그날의 「차인태의...」은 정형화된 기존의 제작 관행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그의 순번이 되면 이따금씩 특집 방송때나 제작되던 주제별 제작을 해나갔다.(그의 이러한 노력은 여러 사람의 공동 제작으로 이뤄지는 아침 생방송과 같은 '띠 프로그램'에서는 좀 튀는 것. 결국 얼마 안 가 자의반 타의반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어쩌면 '새로움'에 대한 욕망의 간절함 때문에 그의 활동 영역이 TV제작국 쪽으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여하간 "새로워지려고 하는 노력은 예술가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말대로 그는 이를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덕목으로 실천했다. 천편일률적이던 낱말 맞추기 게임에서 발상의 대전환을 이룬「유쾌한 스튜디오」의 <브라운 여사에게 물어보세요>. 프로그램의 포맷에서 진행 방식까지 모든 것을 새로움으로 '도배'한 <퀴즈 아카데미>, 전임 프로듀서들이 빼먹을 것은 다 빼먹었다고 생각됐던 「우정의 무대」,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의 환골탈태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것은 '차별화 된 새로움'인 것이다. 그의 새로움은 '새로움을 위한 새로움'이 아니라 낡고 지친 부분을 제거하는 신진대사 작업을 통해 프로그램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이 거의 적중하는 것은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촉각이 보편성과 대중성으로 열려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새로움의 추구, 대중적인 감각, 그리고 교양주의

대중적인 감각에 관한 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어린 시절부터 그가 한번 듣고 좋아했던 노래는 꼭 히트를 했으며,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그가 찍은 미녀는 최소한 4강 안에 들었으며, 그가 좋아한 배우는 꼭 스타가 됐다는 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가 말하는 '대중적인 감각'은 그러한 개인적인 취향과 기호의 수준이 아니다. 그의 프로그램이 대중적인 반향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이 시대 대중에 대한 그의 열려있는 마음과 애정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퀴즈 아카데미」시절 토요일 내내 예선에 참가한 대학생과 시간을 보냈고,「우정의 무대」시절엔 병사들과 합숙 훈련을 즐거이 하며 지금도 출연한 병사 중 누군가가 휴가를 나오면 기꺼이 회사 앞 술집에서 한때를 보낸다. 요즘은 연예인 상대의 「일요일...」을 하느라고 전과 같지 않지만 그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들- 그것도 젊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그가 일에 열심이었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실 물화(物化)된 이 시대의 인간 관계에서 프로그램이라는 당장의 목적이 배제된 만남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정녕 그가 일과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의 대중성이 그들에게 영합하거나 추종하는 쪽으로 기울지도 않는다. 어느 쪽인가 하면 그의 연출론이나 프로그램은 이른바 '당의정론'에 가깝다. 오락 프로그램으로서 오락성을 추구하되 방송의 영향에 대해 누구보다 사려깊은 고민을 한다. 무언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담으려 애쓰고 가능하다면 교육적 효과까지 염두에 둔다. 이같은 '교양주의'를 그의 입사 전 교사경력과 연관짓는 사람도 있으나 그런 연대기적 사실보다는 TV 매체의 위력과 역기능에 대한 그의 성찰과 사색의 결과로 보는 것이 훨씬 온당할 것이다.

요컨대 새로움의 추구, 대중적인 감각, 교양주의는 주철환 프로듀서의 프로그램을 규정하는 주요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그를 설명하기엔 무언가 미진하다. 이에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더더욱 중요한 단서로 그의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주철환적인 방법을 천착해볼 필요가 있다.

'주철환적'인 것이란
 
어느 시청자는 「방송과 시청자」라는 잡지의 투고문에서, "만약 국어사전에 '주철환적이다' 라는 표제어가 실린다면 '방송계에서 신선함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정의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과연 '주철환적' 인 것은 무엇인가. 우선 탁월한 언어의 조탁(彫琢)을 들 수 있다. 국문과 출신에, 국문학 박사과정 아니랄까봐 모국어에 대한 그의 폭넓고 심지깊은 식견은 정평이 나 있다. 그의 이런 능력은 언어의 조립, 말을 통한 의미의 전달이나 기쁨의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유쾌한 스튜디오」에서의 〈브라운 여사...>, <몸 전체로 영화를>, <몸 전체로 속담을>, <그림으로 부르는 노래>등의 코너가 여기에서 출발한다. 「퀴즈 아카데미」에서 출연 대학생들에게 '여름 사냥', '아크로폴리스', '분열에서 융합으로'와 같은 팀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한 것도 이와 연결될 수 있다. 때로는 언어적 작희라는 함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얼마 전 중국에서 온 동포학생의 출연 때 '농구(農具, 籠球)'등을 소재로 스피드 퀴즈를 한 것은 문화 차이나 민족의 이질화가 그 본질이었음을 감안하면 다소 무책임한 설정이었다고 본다) 말을 통한 재미의 개발은 그의 강점이다.

두 번째로 그의 음악적 소양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모여라 꿈동산」,「차인태의...」의 <같이 사는 사회>,「퀴즈 아카데미」등 그가 맡은 프로그램에서의 로고송, 테마송은 거의 그의 작품들이다.(그 바람에 한 때 「우정의 무대」에 나온 이른바 '군바리 블루스'도 그의 작품이라고 와전되기도 했다). 작사에서 작곡까지 해치우는 그의 솜씨는 만인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프로그램엔 음악적 감성과 능력을 바탕으로 한 유려한 음악적 흐름이 있다. 대중 음악에 대한 '감별 능력'은 앞서 말한 바 있지만, 대중의 정서를 꿰뚫는 선곡과 노랫말에 대한 깊이있는 해석으로 영상 음악에서 뛰어난 소양을 구사한다.

그는 어느 대담 좌석에서 스스로 '영상'에 대한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했으나(분위기로 보아 겸손의 말이 아니라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영상의 깊이가 물리적인 심도나 앵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할 때, 그의 '영상'이야말로 깊이 있는 의미와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덧붙여 '역사성'에 대한 그의 식견을 들 수 있다. 「그때를 아십니까」류의 영탄적 회고조의 복고주의와는 또 다르게 지난 세월의 흑백 필름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최근 「일요일 ...」에서의 시도는 참으로 재미있다. 지나간 시절의 삶을 담은 단색조의 화면이 이 시대의 우리에게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면서 '의미있는 웃음'을 끌어내는 것이다. <스타의 데뷔 시절>만 해도 그 화면을 찾기까지 제작진의 노력이 눈에 선한 데다가 세월의 신산(辛酸) 앞에 변한 스타의 어제 오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무언의 메시지가 있다. 시간의 마모성 앞에 저항하는 인간의 운명적인 처연함마저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그의 '역사성'은 이런 뜻이다)

게다가 이즈음엔 한걸음 더 나아가 「일요일...」<시네마 천국>에서의 '미워도 다시 한번'이나 최근의 <코믹 다큐멘터리 「일요일...」 이렇게 만들어진다>에서와 같은 패러디로 과거의 박제된 권위를 해체하는 통쾌함마저 준다. (한국 영화의 과장된 연기,「대한 뉴스」또는「배달의 가수」식의 도식화된 구성과 내래이션이 재생된 장면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면서 시청자들은 지난날의 '기만'을 자각하고 자괴감과 배반감이 착종되는 기묘한 느낌을 갖는다. '그때 저렇게 얼토당토 않는 것에 속아넘어갔구만'하고 말이다...)

이처럼 언어의 조탁, 음악적 식견, '역사'적 안목은 그의 프로그램 도처에 발견할 수 있는 정채(精彩)이다. '주철환적'이라면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굵다란 스케일 보다 작고 아름다운 세계의 구현, 순박한 것이나 때묻지 않은 것에 대한 가치 부여 등은 '주철환적'인 것의 핵심이다. 기실 그의 진가가 드러나는 곳은 연예인 상대의 프로그램보다는 아마추어(대학생, 군인, 가족)들을 끌어들여 '예쁘게' 꾸미는 프로그램에서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손길은 지극히 여성적이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특질과 강점은 프로그램에 임하는 그의 어떤 자세에 의해서 구체화되는 것일까.

프로듀서로서의 그의 촉각은 보편성과 대중성을 향해 늘 열려 있다. 그래서인지 대중적인 감각에 관한 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대중성이 그들에게 영합하거나 추종하는 쪽으로 기울지는 않는다는 게 바로 '주철환적'인 연출법의 매력이다. 오락성을 추구하되 무언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담으려 애쓰고, 가능하다면 교육적인 효과까지를 담고자 하는 그의 연출세계는 그래서 '당의정론'에 가깝다. 사진은 그가 탄생시킨 가장 그다운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퀴즈 아카데미」의 한 장면.

'그것은 아마도 친절일 것입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저잣거리의 우수마발 속에서 인간 주철환을 만날 때 그가 돋보일 만한 것은 별로 없다. 여성적 이미지에다 동안의 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바야흐로 원만구족한 체형으로 바뀌면서 불혹의 초입에 이르려는 일견 평범해 보이는 남자의 외관이다. 한 사람의 프로듀서로 놓고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흔히 프로듀서의 덕목으로 꼽히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나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저돌성 또는 과감성 따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에게 남다른 자질이 있다고는 하지만 구슬은 꿰어야 보배 아닌가. 이 풍진 바다에서 그는 어떻게 파고를 헤쳐나가고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친절일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자신은 타인에 대해 상처를 주거나 기분상하게 하지 않으려 한다. 체질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러지 못한다. 세계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주변의 이웃과 사물들의 고유성을 훼손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심려는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좋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우정의 무대」를 맡은 직후 그가 새롭게 기획한 <아가씨와 병사>같은 몇 가지 코너가 구태의연한 국방부 당국으로부터 '군인 정신을 좀먹는다'는 이유로 보안검열에서 삭제된 일이 있었다. 이 당혹스럽고 난감한 사태를 당하고서도 그는 독일군 장교 같은 검열관들을 서서히 그의 페이스로 끌어넣었다. 한두 달 후 「우정의 무대」는 그의 뜻대로 방송됐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천진난만함, 순수함, 귀여움 등으로 나타나는 그의 친절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하간 스태프에게, 출연자에게, 시청자에게 가능한 친절하려는 그의 생래적(生來的)인 태도는 그의 작품을 맺어주는 접착제이자 윤활유인 것 같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사랑이라고 바꾸어도 좋을 이 친절은 앞서 말한 그의 대중성을 구체화시켜, 대학생 출연자의 발랄함과 재기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로 나타나 「퀴즈 아카데미」의 성공으로 맺어지고, 젊은 병사들의 약동성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로 나타나 「우정의 무대」에서의 폭발적인 열기로 이어졌다. 「열린 세상 우리는 이웃」과 같은 가족 합창제의 예쁘고 깔끔함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두 번째로 어느 프로듀서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방송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집중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일과를 들여다보면 낚시, 볼링, 바둑과 같은 일체의 취미도, 축구, 야구, 배구 등과  같은 일체의 스포츠에도 관심이 없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있다. 다만 그것이 세상사와 절연한 채 그저 웃기기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에만은 시간을 아끼지 않는 프로듀서적인 것임은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새로워지려고 하는 노력은 예술가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자신이 맡는 프로그램마다 이를 기본적인 덕목으로 실천해왔다. 특히 전임 프로듀서들이 맡았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가 그에게 배턴이 이어진 「우정의 무대」(사진)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경우, 그는 그 특유의 차별화된 새로움으로 프로그램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대중은 그를 배반하지 않는다

손대는 프로그램마다 공전의 성공을 거두는 방송계의 마이더스, 주철환 프로듀서. 그는 정녕 완벽한 프로듀서 그 자체인가. 그가 걸어온 길에는 언제나 화려한 성공만이 있었던가.

인생살이가 그럴 수는 없다. 필자가 알기로 그에게도 고전(苦戰)의 기간, 슬럼프가 있었다.「한국방송대상」2년 연속 수상의 찬연한 선풍을 몰고 「일요일...」에 착륙했을 때 그는 몹시 심난했다. 전임자는 「한국방송프로듀서상」을 석권하며 대미(大尾)를 장식하고 명예스럽게 물러났고, MC 주병진은 여러 사정으로 동반 퇴진했다. 당시 메인 MC를 구하기 위해 주철환 프로듀서가 들인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삼고초려를 불사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프로그램을 궤도 위에 올려놓자 이번에는 <몰래 카메라>의 딱지가 그를 따라다녔다.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강박관념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상대사의 「꾸러기 대행진」이 점차 기승을 떨칠 무렵 마침내 결단을 내려 <몰래 카메라>를 내리고,<이동 카메라>를 올렸으나 역부족이었다.「꾸러기 대행진」은 「일요일...」가 잠시 주춤거리는 틈을 타서 2부로 시간을 늘리는 등 대공세를 감행해왔고 「일요일...」는 두 명의 프로듀서를 증원 투입하고 역시 방송 시간을 늘리면서 맞받아치기에 나섰지만 고전은 계속됐다.

'프로듀서는 장사꾼인가, 공무원인가, 예술인인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하여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경쟁을 소모적으로 하는 것일까. 장작을 지고 불섶에 뛰어드는 것인가.'

당시 그는 상당한 회의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련을 극복하는 그의 방법 또한 독특했다.

'아마도 이것은 악몽일 것이다. 혹은 연극의 한 부분일 것이다. 다만 좀 시간이 길 뿐, 지나고 보면 나의 인생 모자이크에서의 어느 한 곳을 나타낼 것이다.'

그가 그렇게 자기 최면을 할 무렵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터질 줄 모르고 한없이 부풀어오르던 「꾸러기 대행진」이 자폭하더니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분리된 뒤 시간대를 바꾸고 달아난 것이다. 「일요일...」를 향한 공략에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뒤를 이은 「오박사네...」또한 자멸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반면 그동안 「일요일...」는 MC 이문세의 영입과 함께 <영자의 방>,<스타 청문회>,<스타의 데뷔시절> 등 계속적인 신진대사를 도모했다. 시청자에 대한 배신감도 잠시, 그는 총력을 기울였다....그리고 결국 이즈음 한숨을 돌리고 있다. 시청률도 안정적인 우위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가 이룩한 '사필귀정'의 의미는 좀더 시간을 두고 분석해야겠지만 광란의 시청률 경쟁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무리수를 두던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일요일...」의 건재로 귀결된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는 곧 '주철환적' 것의 승리, 정공법의 승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중은 그를 배반하지 않은 것이다.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유명해지면 잃어버린 친구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소박한 기대로 이름이 나고 싶었던 소년 주철환, 이제 그는 스타 프로듀서 시대를 개막한 주인공이 돼 독특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그를  사칭하는 사람도 있다). 이즈음 그는 정작 그의 이름에 대한 명예를 신중히 생각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말미에 올라가는 네임 텔롭(name telop)을 '크레디트'라고 말하듯 이름은 신뢰의 상징이다. 그의 꿈은 아주 훗날 신뢰의 상징이 된 '주철환'이란 이름으로 청소년 대상 상담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다.(이따금씩 그에게서 발견되는 명성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이런 측면에서 보아 굳이 이해 못할 계제는 아니다.)「주철환 선생에게 상의하세요」같은 제목으로 청소년들이 그들의 공허를 채우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잘못된 선택에 대한 진솔한 충고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기 전에 그는 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지금은 대중 가수 등용문처럼 돼버린 「MBC 대학 가요제」를 「MBC 강변 가요제」와는 차별화해 대학생들의 진정한 노래 잔치로 만들고 싶다....또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그의 욕심은 끝이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이제 전진(戰塵)을 씻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다. 특히 「일요일...」를 맡은 이후 그는 총알이 빗발치는 일선에 너무 오래 있었다. 생사의 기로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도 때로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가 사랑하는 대중의 감성이 드디어 그의 그물에 걸린 지금(아직 속단인가...?), 이제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들을 당기거나 놓을 수 있다.
'주철환적'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주철환적'인 프로그램.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MBC 가이드 9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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