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8일 목요일

[기사]관객 비판의식 깨우는 '유쾌한 도발'

관객 비판의식 깨우는 '유쾌한 도발'
英작가 반브룩 그래픽 선동展
16~내달 4일 한가람미술관













유머 미사일을 가지고 노는 이 이상한 미키 마우스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 제목은 ‘어린동무’.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물건과 공간을 아름답게 꾸미는 아티스트인가.

천만에. 디자이너는 분노하고 고발하고 비판하고 세상을 바꾸는 자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나단 반브룩의 관심사는 격동의 21세기 초 지구상에 벌어지는 전쟁·세계화·민족갈등, 한마디로 코 앞에 닥친 심각한 시사문제다. 매끄러운 상품·상표·광고 디자인 대신 그는 대량 소비·독재·노동 착취·신제국주의 등을 들이대며 ‘각성하라’ 외치는 디자인을 펼친다. 영국 런던에서 ‘바이러스’란 이름의 스튜디오를 운영 중인 그가 이번에 ‘대중매체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유머와 비판의식을 유쾌하게 흔들어 깨우겠다’는 포부로 서울에서 대형 전시회를 갖는다.












'풍자' 평양이나 디즈니랜드나 비현실적이기는 마찬가지? 작품명은 ‘디즈니랜드’.
‘내일의 진실-조나단 반브룩의 그래픽 선동’(16일~5월 4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오늘의 이단이 내일의 진실이 된다’는 영어 문구에서 따온 것으로 여성평등, 인종차별 등 한때 금기였던 것들이 결국 진실이 된다는 의미.

50여 점의 초대형 그래픽 작품이 나오는 전시의 주제는 무겁고 심각하지만 반브룩의 디자인은 감각적이고 즐겁다. 그 중 ‘NK 프로젝트’는 북한을 소재로 삼은 디자인 작품. 한물간 구호에 매달리는 북한 체제를 팬터지를 날조하는 디즈니랜드와 연결시킨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디즈니랜드의 주인공 미키마우스를 합쳐서 미사일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어린동무’란 캐릭터를 만드는가 하면 북한 최고 지도자와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할아버지의 얼굴을 바꿔치기 하기도 한다.

‘21세기, 모든 정치 이데올로기는 죽고, 남은 것은 오직 애국심과 탐욕’이라고 꼬집기도 하고 ‘왜 독재자들은 어린이들을 사랑하는가’라는 그래픽 디자인에서는 늘 자애로운 어버이 상으로 등장하는 독재자 상을 비튼다. 북한이 펼치는 아슬아슬한 핵무기 게임도 소재로 등장한다.












고발 ‘기업 파시스트’. 바코드로 만든 히틀러 콧수염을 달고 있는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다.
‘북한의 선동기법이 자본주의 체제의 상품선전과 뭐 다를 것이 있느냐’고 묻는 반브룩은 그러나 자유진영의 입장에서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 파시스트’란 작품에서 그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얼굴에 바코드로 만든 히틀러 콧수염을 달았다. 부시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대준 기업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주장이다. 이라크 공격의 당위성을 주장해 온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는 ‘블라이어’(Bliar·블레어+거짓말쟁이)란 이름을 붙였다. ‘로사마 맥 라덴’은 맥도널드 심벌과 빈라덴을 섞어놓은 형상. 맥도널드는 인류 건강을 공격하고 빈라덴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는 주장이다.

더 이상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없다. 오직 기업전략만 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유명 브랜드가 막강 파워를 자랑한다. 그 힘은 종교, 국가보다 강력하다. 작품 ‘전지전능 기업상표 만다라’에는 영적 해탈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듯한 명상적 이미지가 넘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늬는 모두 코카콜라·나이키 등 대기업 상표로 이루어져 있다. 반브룩이 처음으로 실험적인 애니메이션까지 선보이는 이번 대형 전시는 예술이란 이름 때문인지 다소 무력했던 미술판에 정신 번쩍나는 자극이 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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