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8일 일요일

워크샵

  회사 워크샵 다녀왔다.

  금요일 아침에 가서 하루 종일 토론하고 세미나 하고 발표하고

  하루 자고 아침에 돌아왔다.

  호텔 아카데미하우스라는 곳인데 예전에는 유명했나보다.

  1988년도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 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씨가 모여서

  회의하는 장면도 있고 독일 대통령도 와서 자고 갔단다.

  근데 88년 이후에는 별로 인기 없어진 모양인지 그 이후 사진은 없었다.

  시설도 80년대 식이었다. 그 당시로 봤으면 꽤 괜찮은 호텔이었던 것 같다.

  소개글을 보자면 "비영리 목적으로 블라블라... 국가의 장래에 대한 연구가 어쩌고.... 그리스 철학....

  아카데미에서 지성의 토론을... 조용한 분위기에서 토론과 지필의 공간..."

  => 약간 현학적인 분위기가 난다.

  방에 냉장고가 있었는 데.

  거기 있는 음료수는 좀 비싸서 손을 못 댔다.

  아주 작은 미니 양주 병이 16,000원. 콜라 캔, 생수 등은 1,600원.

  식사는 네 끼 전부 거기서 먹었는 데.

  한 끼에 16,000원.. 맛있기는 했는 데. 그렇게 비싸게 주고 먹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내주는 거니까 잘 먹고 왔다.
  (그 날 하루 먹고 자고 하는 데 드는 돈이 내 일당보다 훨씬 비싼 건 사실이었다.;;)

  이런 저런 토론 중에는 기술적인 것도 있었고

  그냥 프로그래머들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 데.

  가장 와닿는 건. "엔지니어의 미래" 라고 해서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 까 하는 거 였는 데.

  조사를 위해 손을 들어보게 했다.

  일반 대부분 팀원들은 38살 쯤에 짤릴 것 같다고 손 들었고

  팀장님들은 한 45살까지는 버틸 수 있겠다고 손들었다.
  (울 회사 최고령자가 그 나이쯤 된다. 팀장님들은 거의 30대)

  55살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법적으로 울 회사 정년이 55~56세 쯤 된다.)

  뭐 하지만 울 학교에서 처럼 암울한 분위기는 적었다.
  (학교 친구들과 이공계 얘기를 할 때는 솔직히 별로 살고 싶지 않다.)

  어른들답게 다들 살 길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일단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거니까. 열심히 해서 35살 안에 성공해야 되나보다.
  (회사 임원들처럼..)

  그리고 회사의 부족한 점에 대한 성토를 다들하고...
  (울 회사는 꺼리낌 없이 잘못된 점을 높은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서 좋다.)

  버벅거리긴 했지만 저녁에 술마실 때 개인적으로 CTO님과 이야기도 했다.
  (항상 면접 같은 기분이 약간 들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적 한 번도 없지만 그래도 옆에서 뭐든 말하면 들어주신다. 마치 동아리 선배처럼..)

  회사가 규모에 비해 광고, 마케팅도 빈약하고 기술도 좀 취약한 건 문제로 지적됐는 데.

  정말 걱정이 됐다. 내가 단지 여기서 월급 받아서 걱정된 것 뿐만이 아니라.

  이런 좋은 분위기를 가진 회사가 울 나라에 몇 개 없는 데.

  망해버리면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에 취직해야 되니까;;

  울 나라 IT업계들이 다들 그렇듯 뭐 내놓을 만한 기술은 없어보인다.
  (내가 초보 프로그래머라 몰라서 그러는 걸까?)

  아바타, 게임머니 많이 팔고 회원수 무지 많고 자본도 이제는 적지 않은 것 같은 데.

  엔지니어들은 다들 어떤 생각하냐면 뭐 새로운 기술 그런거 찾으려고 하지만

  솔직히 옆에서 봤을 때 구먹구구식으로 보이고
  (IBM에서 받은 교육이라든지, Google, MySQL, MS등에서 하는 것들과 비교했을 때..)

  마케팅, 광고, 기획 공부해서 40살에는 개발보다는 기획으로 얼른 옮기는 게

  인생 더 재미있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와서 프로그래밍이라든지 기타 많은 걸 배웠지만 솔직히 이런건 의욕있는 대학생들이면 충분히

  할 일이지 프로들이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참 많다.
  (사실 이 회사의 설립자들이 휴학한 대학생이라 막 졸업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뭔가 경험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큰 프로젝트를 할 능력이 울 나라 회사들에는 없어보인다.

  그냥 뭐 미국에서 몇 억 달러 투자해서 좋은 거 만들면 Manual 읽어보고 몇 개 사와서 공부하는 식이다.
  (내가 너무 기술 orient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회사가 표방하는 것처럼 100년 기업이 되려면

  이래서는 안된다고 본다.

  5년 기업, 10년 기업이라면 젊은 대학생 많이 뽑고 아바타 같이 참신한 생각 많이 하면 성공할 수

  있겠지만 100년 기업이라면 튼튼한 뿌리가 있어야 된다.

  석사, 박사도 많이 뽑고 10년 뒤에 필요한 기술도 연구해야 되고.

  아무리 봐도 울 나라 업계는 다 "대박 기업"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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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해서 IBM, MS, SUN 이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든다.

  30살에는 들어가서 10년 쯤 일하고 나와서 그 동안 알게된 인맥과 기술로 작은 회사 하나

  차리면 되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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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S도 대학 중퇴한 빌게이츠가 젊은 나이에 차렸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모두가 구리다고 말하는 DOS를 만들었다.)

  기술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Unix 대가들과 OS에 정통한 나이든 교수들을 많이 고용했다.
  (Windows NT, 2000 부터 말이지..)

  젊은 이들 가지고 회사가 단기간에 성공할 수 있겠지만

  장수하려면 역시 경험과 연륜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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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하다.

  우리나라에는 왜 20살의 천재가 없을 까?

  미국, 유럽에는 20살에 Linux Kernel을 만지는 영웅들도 많은 데.

  그런건 어디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물론 유명한 교수들이 쓴 OS 책이 있긴 하지만..)

  뭐 하긴 울 나라 젊은 이라면 20살까지는 수능을 위해 죽도록 영어 단어와 미분, 삼각함수 공부를 해야하고

  스타크래프트 해야지 Linux Kernel을 뜯어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나도 대학 때 충분히 시간이 있었지만.. 두려웠다. 세탁기나 자동차 뜯어보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짜증나는 일이기도 하고 이거 의사소통이 되야 문서도 읽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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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나는 정말 소극적인 생각으로 이공계를 택한 것 같다.

  영어가 싫으니까 문과는 지우고, 비위가 약하고 암기가 싫으니까 의대를 지우고

  먹고 살기 힘들다니 자연과학부를 지우고 만만하게 남은 게 전산과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게 그렇지만 이공계에서도 성공하려면 자신감과 용기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 까짓 졸업장 한 장과 영어 성적 한장은 아무 필요 없는 것 같다.

  초봉에서 몇 십만원 차이날 뿐 10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행정고시, 외무고시, 사법고시, 의사고시, 임용고시..

  이런 고시 인생을 선택할 거였다면 졸업장과 영어 성적, 학교 학점이 내 인생을 인도해 주겠지만

  아무튼 나도 모르게 신세계로 가는 배에 올라타버리게 됐다.

  일단 죽을 때까지 내릴 수는 없으니까.

  좌절하는 건 소용없다.

  어디든 배를 저어서 내 땅을 찾으면 깃발 뽑고 사과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거다.

댓글 1개:

  1. ㅋㅋ....고민이 많구나...ㅎㅎ

    고민하는것도 좋지만....고민만 하면..암것도 아니징..암튼 열심히 해서...사과나무 심을수 있기를...

    못심어도...나중에....너네집 마당에다 심으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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