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29일 일요일

예측 가능성

회사에 1년 있어보면서 느낀 건데.
사람이 힘든 건 꼭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도대체 지금 뭘 해야 할지, 얼마나 일을 하면 될지 모를 때가 더 힘들다.
일이 산더미 같이 많다고 하는 건. 해결해야할 일이 많기도 하지만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고 다음 문제는 어느 정도면 해결할 수 있는 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무작정 많아 보였을 때 하는 말이다.
일이 조금 많더라도 예측이 가능하면 그래도 낫다고 본다. 회사가 아무리 착취의 현장이라도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주지는 않으니까.
(할 수 없는 걸 주는 회사는.. 망한다. 못하는 데 어쩌란 말인가.)

일 하나 끝냈더니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2개 더 생기고 그러는 게 더 막막하다.
아무리 쉬운 일들이라도 도무지 몇개나 되는 지 알 수 없는 게 제일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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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가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공부하는 것도 많지만 어떤 걸 공부해야 될지.
이거 공부하면 어떤 걸 할 수 있는 지 앞 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고시 경쟁률, 공무원 경쟁률이 이공계 취직률과 비교가 안되게 높지만 그걸 선호하는 건 길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0권이든 100권이든 문제와 답을 외우면 되니까.
모의 고사를 보고 예상 문제를 풀면 합격 가능성과 합격 확률이 나오니까.
합격하면 적어도 몇 급 공무원이 되고 평균적으로 얼마의 연봉이 기대 되니까.

학교에서는 무작정 교과서 주면서 이거 공부하다보면 저절로 풀리게 되있다고 하는 데.
그런 식으로는 안된다고 본다. 이걸 공부하면 뭘 만들 수 있고 어디에 쓸 수 있는 지 실제적인 것도 필요한 것 같다.
뭐 고대 수학자의 제자가 자신의 학문의 유용성에 의문을 갖는 제자를 쫓아냈다는 유명한 고사도 있지만 그 시대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그들은 솔직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로 충분한 재산과 명예, 권력이 있었으니까.
기초 학문을 하더라도 대략 어느 정도 연봉이 보장되는 지, 이직률은 어떤지, 복지는 어떤지 이런 걸 잘 알려줄 필요가 잇는 것 같다.

매일 신문에서는 백수가 늘어난다고만 하고 조교의 한숨소리만 들리고 도대체 졸업하면 어떤 길이 있는 지, 어떤 노력을 하면 되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모두가 포기할 수 밖에 없다.

금광을 캐는 것처럼 무조건 땅을 팔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험한 소문만 횡행하면 도무지 학교에서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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