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8일 금요일

내 손

나는 손을 많이 쓰는 사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가만히 두질 못했다.


장난감을 굴리고 부시고 다시 조립하고.


수학을 좋아했던 초, 중학교 시절에도 머리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주로 펜으로 쓰면서 계산을 했으니까.


그 뒤로 컴퓨터를 배우고 전공이 컴퓨터가 된 뒤로는 말보다 손을 더 많이 쓰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면에서도 내게 어울리는 직업인것 같다.


손으로 먹고 사는 직업.


 


불안하거나 심심하면 책상을 두드리고 건반을 치듯 누르고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하고..


말을 할 때도 항상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뭔가 그리려는 듯하고


flow나 생각의 덩어리가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한다.


일종의 visualize인 셈인데.


남들처럼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니까 펜으로 긁적거리기보다는 허공에 손짓을 하기를 즐긴다.


 


서양에 문화에서는 대화시에 제스처가 많은 사람을 괜찮게 생각한다.


좀 더 흥미있고 주위를 집중시킨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음악의 지휘자도 손을 많이 사용한다.


(손을 많이 쓰는 특이한 동양인인 내가 봐도 너무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쓰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동양 문화에서 대화시에 입이외의 다른 부위가 움직이는 것은 금물이다.


다리를 떨거나 이리저리 칠판 앞을 움직여도 안되고 청중에게 다가가거나 멀어져도 안된다.


책상을 내리쳐도 안된다. 심지어는 음악의 지휘에서도 단지 가만히 서서 음악이 잘 시작되고 종료되기를 시켜볼뿐


연주 중에 시그널을 전혀주지 않는 다.


 


그래서 그런지 나처럼 대화시 손을 많이 쓰는 사람은 동양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 같다.


정서 불안으로 간주되고 내 손을 못 움직이게 하기 위해 주위 사람들이 애를 쓴다.


"불안하다.", "짜증난다.", "거추장 스럽다.", "가만히 좀 있어라."


심지어는 손을 묶어버리려고 하고 결박을 짓기도 한다.


 


아무튼 내 생각의 일부는 손에서 나오는 것 같다.


생각이 안나면 손으로 머리를 긁적여줘야 하고


불안하면 책상도 두드려줘야 하고


잘 했다고 생각하면 박수도 쳐야하고


붕~ 뜬 기분일 때는 손가락을 휘져어야 한다.


결단이 섰거나 짜증나면 주먹으로 책상을 치기도 해야 하고


미칠것 같은 때는 머리카락도 헝클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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