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무죄 판결을 두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를 반영하는 언론들의 논조는 강경하다. 그런데 이런 언론들은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지만 국민들 사이를 의심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하는 가운데 피해의식을 더 확산시켜 오히려 논의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조선일보>는 5월 24일자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는 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할 경우 여호와의 증인과 유사한 교리의 종교가 더 생겨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미 다른 종교에서도 병역거부 선언자가 등장하고 있다. 종교 교리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 소신과 신념을 내세울 때 법이 이를 분리해 판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병역 의무를 피하려고 자기 양심을 위장하는 ‘이기적 병역기피자’를 어떻게 판별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군대 안 가겠다며 무릎 연골까지 잘라내는 세상이다.”라고 해서 병역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날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 "특수한 안보환경"에서 안보 불안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는 직설적으로 기피 원인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5월 22일자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는 무죄라니…>에서 “양심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면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들만이 아니라 신념에 의한 평화주의자나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는 인권론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헌법이 부과한 국방의 의무가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 걱정이다. 누구나 군에 가서 몇년간 어렵게 봉사하기보다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편하게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양심의 자유를 내세워 군대에 가고 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많은 군대 기피자로 병역 제도가 유지 되지 않을 정도에 이를 것임을 걱정하고 있다. <중앙일보>의 사설은 종교신자를 빙자한 기피뿐만 아니라 평화주의자나 인권론자들까지 편하기 위해 병역기피자가 된다는 부분까지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도 5월 24일자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 구분하기도 어렵다>에서 "나라를 위해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는 다수의 국민은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이 병역거부를 조장할 우려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와 양심을 빙자해 군 복무를 기피하는 자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고 말했다. <동아일보>의 사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빙자해서 군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급증할 것임을 우려하고 있다. 여기게 다른 국민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끼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즉 다른 국민들은 모두 국방의 의무를 지는데 종교적인 신념을 양심적 병역거부의 이유로 허용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논조의 중심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인정은 군대기피자를 늘리고 이것이 단순한 정도가 아니라 국민 징집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게 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국방이 불안하게되고 결국에는 국가의 불안으로 가게 되어 심지어는 나라가 망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또한 다른 국민들은 모두 고생했는데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만 보아줄 수는 없다는 이른바 “본전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주기도 한다.
이러한 논조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한없이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해서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로 보인다.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 위장신자가 되어 병역을 기피하기를 밥먹듯이 하는 못된 국민들 밖에 없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성실하게 국방의 의무를 다해왔다. 이 순간에도 수많은 국민들이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힘들다는 해병대나 특수부대에 지원하고 있으며 이의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병역기피는 지금까지 부유층들이 더욱 심했다는 정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일부 기피자들이 왜 생기는가를 보아야 한다.
병역거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심리 중에 하나는 “누구는 고생하고 누구는 고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뇌리에는 군대라고 하면 “억지로 끌려가서 죽도록 고생만 한다는 심리가 강하게 박혀있다. 일종의 피해 의식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군대의 불합리한 점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인권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몸은 국가의 것이라는 비이성적, 비정상적인 논리가 오히려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논리라고 여겨지는 가운데 수십 년 동안 각 개인들의 정신과 육체를 멍들게 했다. 심지어는 불합리하게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아다. 그리고 기본적인 시설도 없어 심지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적도 많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개인의 꿈과 자아를 실현하는데 군대의 시간은 암흑 그 자체이며 인생의 퇴행기간이었다. 또한 영혼과 생명을 파괴시키는 곳이었다. 그렇다면 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언론이나 미디어의 많은 논조에서 이러한 부분이 지적되지 않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복무제가 없는데도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것은 시기상조라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언론의 자유에 따라 사이비 언론이 나온다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없앨 수 없는 것처럼 양심의 자유에 따라 사이비가 나온다고 양심적 자유를 제한하거나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점은 언론이 잘 알고 항상 줄기차게 주장해왔지 않았나.
중요한 것은 우리 군대를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인권이나 개인들의 자아 실현과 연결시켜줄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군대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민족을 위해서 사회봉사하러 간다는 인식이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국민들을 병역을 기피하는 못된 사람들로 서로 의심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가? 더 이상 국민들을 구더기로 만들지 말자.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는 역사와 시대의 대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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