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5일 일요일

풀칠(glue)

나는 풀칠 같은 걸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9살 쯤 되면 잘하게 되던데, 나는 13살때까지 그랬다.
요즘은 딱풀(반고체형 풀)이 나와서 풀칠이 쉽지만 액체풀은 조금만 많이 짜도
종이 전체가 물에 불어서 꼬부라지고 끈적거리고 손도 끈적거리게 된다.

왜 그렇게 풀칠을 못했는 지 생각해보면 방법 자체가 잘못되있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예를 들자면 반명함판 사진 뒷면에 풀칠을 할 때 액체 풀이라면 그 면을
가득 풀칠하면 안되고 아주 살짝 하든지, 액체가 두껍게 나온다면 압착시에
옆으로 퍼질 것을 고려해서 interlace하게 혹은 sparce하게 액체를 도포해야 한다.
왠지 그렇게 도포하는 건 맘에 안들었다.

단순히 풀칠 뿐만 아니라 손톱을 깍는 일도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손톱을 1mm 이상은 남겨야 손톱을 깍은 후에 아프지 않는 데,
항상 너무 바싹 깍아서 눈물을 찔끔거리곤 했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어도 너무 세게 틀다가 껏다가를 반복하다가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공부도 미리 몰아서 1주일치를 하고 몇 주간 놀거나 그 반대일때도 많았다.

컵에 물을 따를 때도 70~90% 정도 따라두면 될 것을 항상 99%까지 따르거나 표면장력의 한계까지 채워서 들어올리는 순간 10% 정도 흘리곤 했다.

추상력인 레벨에서는 문학적 허용이라든지, 중의성도 맘에 들지 않았다.

오래달리기를 할 때도 숨이 차서 더 이상 뛸수 없을 정도로 한 바퀴를 돌고 나머지 2바퀴는 거의 걸어서 돌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왜 배우기 어려웠을 까?
누구도 내게 '적당히'의 구체적 예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 건 '너무 상식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어른들은
나를 꾸짓거나 '적당히'라고 표현할 뿐 어디서 멈춰야 하는 지 보여주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컵의 물은 60~80%까지 내키는 데로 채우라고 몇 번 말해주고 보여줬다면 쉽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어떤 컵이나 물도 적당한 것이 없었고 그런 건 누구도 가르치지 않았다.
수학, 과학을 아무리 공부해도 그런건 안나오고, 인문, 사회학에서도 역시 그런 것은 하찮은 문제였다.

나는 '정확한 것'의 개념은 쉽게 배웠지만 '대충', '어느 정도', '대략', '약'은 쉽게 배우지 못했다.

경험적 오차범위, safety factor, 점근적 최적해 접근 같은 것들을 배우는 데 아주 늦었다. 어쩌면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에 알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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