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21일 월요일

디지털 적응도

프로그래머라고 완전히 디지털 매체에 익숙한 것 같지는 않다.
('프로그래머라고 해서 다 파워유저는 아니다.' 라고 해야하나?)
어떤 프로그래머는 내게 file명이나 URL을 알려줄 때
항상 한 글자씩 또박또박 불러준다.


MSN으로 copy&paste하면 나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데,
내게로 걸어와서는 내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에 연필로 적고 간다.
아무리 e-mail로 보내라, MSN으로 보내달라고 말해도,
다음번이면 또 걸어와서 적는 다.


적는 과정이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머리 속에 기억했다가
중간에 까먹어서 2~3번씩 자신의 모니터와 내 자리를 왔다갔다 하고,
연필로 적을 때 실수도 많이 한다.
"com 이었나? co.kr이었나? 음. .net이었던가?"
"index.htm 인가? index.html인가?"
"&, #, = 가 들어가서 외우기 어렵군, 잠시만 기다려줘 다시 보고 올께."


메신저를 이용하면 중간에 공백이나 엔터키가 들어가는 경우를 제외하면 error가 거의 없다.
디지털 정보를 굳이 아날로그로 변환해서 다시 변환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까?


e-mail이나 command를 모르는 초보도 아니면서
항상 뭔가 이상이 생기면 이렇게 말한다.
"이리 와서 내 화면 좀 봐줘."
한가할 때는 걸어갈만 하지만 바쁠 때 일의 리듬을 끊으면 매우 짜증난다.
"이리와서 봐줘"라고 질문하는 사람치고 중요한 것을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문제는 묘사를 할 수 있으면 분석이 되고,
분석이 되면, 추론이 되서 50%는 저절로 해결된다.
특히나 경력이 몇 년씩 된 프로그래머라면 자신이 처한 문제정도는
표현할 수 있어야 된다.
그리고 동시에 여러 일을 하기 때문에 그 문제는 e-mail 보내서
다른 사람에게 해결을 맡기고 다른 문제에 집중하면 된다.


아무튼 하루종일 질러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나와 관련없는 문제도 옆 사람들끼리
"이거 안되고 있어, 이리 뛰어와."
"이게 말이 되는 거야?"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모르겠어, 네가 와서 봐."
라고 계속 질러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집단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다.
요즘은 굳이 글로 쓰지 않아도 된다.
화면 캡쳐도 있고, url만 pass하면 대부분 같은 증상을 공유할 수도 있고,
colaboration tool도 점점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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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내 자신도 디지털 적응도가 높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세대보다 지금 초등학생들이 인터넷을 더 잘 쓴다.
그들은 이미 선생님이 인터넷으로 숙제를 내주고 제출도 인터넷으로 한다.
반면에 우리 세대는 인터넷으로 숙제가 나오지만 제출은 종이로 인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전산과도 종이로 인쇄해서 숙제를 내는 과목이 있다.)


내 친구들 중에는 메신져를 쓰지 않는 친구도 30%가 넘지만,
초등학생은 90%이상 쓰고 있다.


나는 인터넷 채팅, 노래방 서비스가 어색한데, 그들은 익숙하다.
나는 블로그에 사진 올리는 게 번거로워서 잘 안하는 데,
내 동생은 벌써 수백, 수천장을 올렸다.


기획자들은 나보다 컴퓨터의 구조에 대한 지식이나 인터넷 프로토콜은 잘 모르지만,
정보가 많은 site는 더 많이 알고 있다.

댓글 2개:

  1. 피플웨어에서 말하는 대로 2,3 명 단위로 나뉘는 사무실 구조라면 해결될 텐데... 그러면 찾아가기 귀찮아서라도 디지털을 이용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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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36층이라도 습관이 안 들면 찾아오지..

    그리고 내 옆에 앉은 2명이 또 있지.;;



    울 아버지 회사에서 말이지.

    MSN을 쓸 줄 몰라서,

    플로피 디스켓으로 50번 왔다갔다하면서

    복사하겠다는 열혈 직원도 있었어.;

    그 열정이면 차라리 msn을 배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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