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처음으로 뉴턴의 F=ma 같은 공식을 배우게 되면
이것이 정말 진리인지 아니면 말장난인지 매우 의심이 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냥 진리라고 믿어질 뿐이다.
기호학에서는 이 같은 의문에 답을 주고 있다. (연구하고 있다.)
문화기호학 [ 文化記號學 ] : http://100.naver.com/100.php?mode=all&id=65979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문화기호의 학’으로, ‘자연기호의 학’인 자연기호학과 대립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전자를 단순히 기호학(smiologie)이라고 하고, 후자를 징후학(smiologie)이라 하여 구별하는 학자도 있다.
E.뷔상과 L.J.프리에토로 대표되는 기능주의학파가 그 입장인데, 그들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의 ‘기호(signe)’라는 개념은 매우 다종다양하다. ‘피는 상처의 기호’라고 말한 에피쿠로스식(式) 생각에 따르면, 검은 구름은 폭풍우의 기호이고, 연기는 불의 기호, 고열은 병의 기호가 된다. 또, 수학의 연산기호, 교통신호, 지도의 표지, 모스신호 ·해상신호를 비롯하여, 몸짓이나 의복 ·그림 ·조각 ·음악 등도 일종의 기호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기호를 모두 기호학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폭풍우를 알리는 검은 구름으로 대표되는 기호는 자연기호, 즉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다른 문화기호가 가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의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기상학자와 교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고, 38 ℃의 열이 의사에게 무엇인가를 통보하려는 것도 결코 아니다. 이것들이 자연현상임에 대해서 인공적 기호는 인간이 만든 코드에 속한다.
프리에토 등의 정의에 의하면, 기호학이란 곧 ‘문화기호학’이며, 커뮤니케이션의 의도와 양해를 전제로 하는 ‘신호’의 연구였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자연과 문화의 분명한 구별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물리학 제국주의하에서 자연과학이 만들어낸 사실신앙에 입각한 것이다. 사실은 어디까지나 사실로서 움직일 수가 없다.
과학이론은 이 ‘사실의 세계’와의 조합(照合)에 의하여 확보되며, 그 체계의 진위는 이론 밖에서 이론을 심판하는 엄파이어로서의 사실이 정한다는 베이컨주의인데, 이 베이컨주의 또한 하나의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뉴턴처럼 “나는 가설을 만들지 않는다”는 입장에 설 수는 없을 것이다. 뉴턴 자신이 절대시간이나 절대공간 ·동일원인 ·동일결과라고 불리는 인과율을 가설에서 출발하여, 그 이론에 의해서 역으로 데이터를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기호학과 자연기호학, 또는 기호학과 징후학을 구별하는 근거는 이미 없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표(indice) ·징후(symptme) ·신호(signal) ·상징(symbo1e)등을 모두 포함한 넓은 뜻의 ‘기호(signe)’가 문화기호학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여러 기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언어기호를 둘러싼 고찰에서부터 기호의 본질을 살피려고 한 것이 20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가지는 현전(現前)기호학이다.
현전기호학은 기호를 실재(實在)의 표상 또는 대행(代行) ·재현물(再現物)로 보는 기호관을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요컨대, 오리지널을 가리키는 코피(copy)로서의 기호이며, ‘진짜를 가리키는 대용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지하라’는 명령이 진짜라고 한다면, 이를 대신해서 그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 문명사회에서 사용하는 적신호라는 기호이고, 어떤 미개사회에서의 신의 노여움이 진짜라고 한다면, 이에 대신해서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 홍수라는 기호라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보편적 관념의 대용품은 때로는 ‘애정’이고 때로는 ‘love’, ‘Liebe’이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진짜는 선험적(先驗的)으로 현전(現前)하는 것으로 여겨 이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철학자나 언어학자들은 ‘현전과 기호, 로고스와 목소리, 사물과 명칭, 관념과 표상’과의 관계만을 탐구해왔으며, 이것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존재란 항상적 현전성(現前性)이다”라고 하는 형이상학과 같은 뿌리를 가지는 기호학이다.
F.소쉬르의 문화기호학이 이러한 현전기호학에 대한 진보적인 비판이라고 간주되는 까닭은, 그가 기호개념을 협의의 용어나 부호로부터 유형 ·무형의 문화현상일반으로 확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문화 자체를 하나의 기호로 본 데에 있다.
이 ‘문화라는 기호’가 뜻하는 기호성이란, 이미 ‘스스로 외재(外在)하는 실체를 고지하거나 지시하는 표상’이란 뜻이 아니라, 스스로 일체의 근거를 가지지 않는 ‘비실체적 관계, 자의식 가치’라는 뜻이었다.
따라서 문화기호학이란, 개별적인 문화 안에서 쓰이는 여러 가지 기호를 분류하거나 기술하는 일이 아니라, ‘문화라는 기호’의 해명에서 출발, 관계론적 시점에 입각한 문화학 ·인간학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학문이다.
문화란 원래 본능도식(本能圖式)으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호=말’에 의해서 태어난, 또 하나의 ‘기호=공동환상(共同幻想)’ 그 자체라는 것이 이렇게 해서 판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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