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존재감이 없을 까?
생각을 해보니, 지각을 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지각을 자주 하는 사람은 존재감이 크다.
항상 주위 사람이 왔는 지, 안 왔는 지 챙겨줘야 하니까.
출석을 부를 때도 한 번에 대답하는 사람은 그냥 일반 대중 속에 묻히지만 두 번 부르면 더 튄다.
수업시간에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온다고 생각해보라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매 시간 그렇다면 더 잘 알게 된다.
나처럼 절대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름을 두 번 부를 일도 없고
관심을 가져줄 필요도 없다. 항상 정시에 그곳에 있을 것이고 잘 따라 올테니까.
지각하는 사람은 선생님이 이름도 더 빨리 외운다.
지각을 많이 하고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은 보랏빛 소처럼 빛이 난다.
특징을 지울 수 있다. 개성이 있고, 별명을 부를 수 있다.
나중에 지각을 하지 않게 되었을 때도 그 이름은 잊혀지지 않는 다.
지금까지 동아리나 팀에서 존재감이 큰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제 시간에 오지 않는 사람은 전화를 여러번 해주게 되고
설명도 개인적으로 다시 듣는 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자주 잃어버리면 옆 사람들이 항상 같이 찾아준다.
지각을 하는 사람은 모두에게 스릴을 안겨주고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된다.
"하마터면 저 친구가 늦게와서 배를 못 탈뻔 했지뭐야."
"철수가 정시에 도착했어."는 전혀 뉴스 거리가 되지 않지만
"철수가 10분 늦었어"는 뉴스가 된다.
"철수가 지갑을 안 잃어버렸어"는 역시 아무 이벤트도 아니지만
"철수가 지갑을 또 잃어버렸어"는 이벤트가 된다.
마치
"시저가 살아있다."는 뉴스가 아니지만
"시저가 죽었다."는 엄청난 뉴스인 것과 같다.
물론 매번 지각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으면 존재감은 크지만
부정적인 인상이 각인된다.
하지만 미안하거나 불쌍한 표정을 짓고 벌금을 꼬박꼬박내고
사과의 의미로 뭔가를 사준다면 얻어 먹으면서 화를 낼 수는 없게 된다.
심지어 지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협상에서도 유리한 입장에 선다.
괜히 바보처럼 10분~30분 기다려준 사람은 그만큼 시간을 손해 봤고 초조하게 기다린다.
언제 협상이 시작될지 결정한 권한이 그에게는 없다.
더 늦게 오는 사람이 도착해야 협상이 시작되는 거니까.
그리고 그를 빼고 그냥 어떤 회의나 의사결정을 했을 때,
그는 "미안해 나는 그날 늦게와서 듣지 못했어."라고 변명하며 면책을 받을 수 있는 명분을 하나 얻게 된다.
자꾸 그러다보면 기다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도 하고
면책을 계속 받으면 특권을 가진 것처럼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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