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 ||
한때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나친 절약이 소비를 위축시키고 제품이 생산되어도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저생계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서민들에게 소비를 권장할 수는 없다. 소비는 중산층 이상의 부자들이 해야 한다. 최근에 부총리도 부자들이 돈을 풀지 않아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을 한 일이 있다.
공의휴(公儀休)는 노나라의 학자로, 사마천의 순리열전(循吏列傳)에 오른 사람이다. 순리는 법을 준수하고 도리를 따르는 어진 관리를 일컫는 말이다. 공의휴는 재능과 학식이 높아 박사로 불리다가 노나라의 재상으로 발탁되었다. 노나라는 오랜 가뭄과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곤궁했다. 공의휴는 재상이 되자 관리들이 가난한 서민들을 상대로 이익을 다투지 못하게 했고 뇌물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하루는 하급 관리가 공의휴에게 생선을 선물했다. 공의휴는 생선을 몹시 좋아했으나 받지 않고 돌려주었다.
“재상께서는 생선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어찌 받지 않으십니까?”
생선을 선물한 사람이 물었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이오. 나는 지금 재상 지위에 있으므로 나라에서 받는 봉록으로 충분히 생선을 살 수 있소. 지금 생선을 받고 부정한 짓을 했다고 파면을 당하면 어떻게 생선을 사 먹을 수 있겠소. 또 나 같은 사람이 생선을 사 먹지 않고 누가 주는 것만 받아먹으면 생선장수는 누구에게 생선을 팔겠소? 그래서 받지 않은 것이오.”
공의휴에게 생선을 선물하려고 했던 사람은 크게 감탄하고 돌아갔다. 공의휴가 생선을 직접 생선장수에게 사서 먹는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노나라의 수많은 선비들도 직접 저잣거리에 나가서 생선을 사서 먹었다. 그 바람에 생선장수들은 안정적으로 생선을 팔아 생계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하루는 공의휴가 퇴청을 하여 저녁을 먹는데 야채가 유난히 맛이 좋았다.
“부인, 이 야채가 맛이 참 좋구려. 이 야채의 이름이 무엇이오?”
공의휴가 부인에게 물었다.
“이것은 아욱(葵)이라는 푸성귀로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이면 유난히 맛이 좋습니다.”
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서 났소?”
“제가 집 뒤의 밭에서 키운 것입니다.”
부인의 말을 듣고 공의휴는 밤중에 아욱을 모두 뽑아서 버렸다.
“공들여 키운 아욱을 모두 뽑아서 버리면 어떻게 할 셈이에요? 이제는 시장에서 사 먹을 수밖에 없잖아요?”
부인은 펄펄 뛰며 공의휴를 원망했지만 그는 검은 수염만 쓰다듬을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부인은 공의휴가 집안 살림을 도무지 모른다고 화를 냈다. 재상의 지위에 있을 때 돈을 모아야 하는데 공의휴는 소비만 할 줄 알았지 절약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은 공의휴가 입을 비단 옷을 새로 지어서 바쳤다. 공의휴가 녹봉을 받는 대로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물건을 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변변한 옷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허, 이 비단이 몹시 아름답구려.”
“마음에 드세요?”
“마음에 들다마다.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은 역시 당신뿐이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그래, 이 좋은 비단이 어디서 났소?”
공의휴는 비단의 촉감이 좋다면서 기뻐했다.
“우리 집에 좋은 베틀 기계가 있고 며칠 전에 베를 짜는 솜씨가 좋은 하녀가 새로 들어왔기에 집에서 짰습니다.”
부인이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의휴는 그 말을 듣자 즉시 베틀 기계를 불살라버리고 베를 짜는 솜씨가 좋은 하녀를 집에서 내보냈다.
“지난번에는 아욱을 모두 뽑아서 버리더니 이번에는 베틀을 불사르고 하녀를 내보내니,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부인이 벌컥 화를 냈다.
“부인은 왜 화를 내는 것이오? 베틀을 불살라버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소.”
“대체 무슨 이유인지 말씀이나 해보세요.”
“물건을 살 만한 사람이 물건을 사지 않으면 농민들이나 공인(工人)들은 누구에게 물건을 팔아 돈을 벌겠소?”
공의휴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공의휴는 재상의 지위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솔선수범한 것이다.
우리의 경제는 대기업 위주로 되어 있다. 대기업은 호황을 누리지만 중소기업은 불황의 깊은 골에서 헤어나지 못해 양극화 현상을 빚고 있다. 국민들은 브랜드가 확실한 대기업 제품을 선호하고, 청년들은 대기업에만 취업하려고 해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구인난에도 불구하고 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심각하다.
공직자와 정치인을 비롯하여 사회 지도층의 자녀들 역시 대부분 대기업을 선호해 이름 있는 기업에서 활약하고 있다. 공직자나 사회 지도층의 자녀들이 중소기업에 취업을 한다면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소비가 대기업 제품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 제품을 팔아주는 운동을 벌이는 것도 경제의 양극화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관객들이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 블랙버스터 영화에만 몰려들면 저예산으로 찍는 예술영화는 설 땅이 없어진다.
공의휴가 농민들이나 공인들을 위하여 아욱을 모두 뽑아버리고 베틀 기계를 불살라버린 것은 진정한 위정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소설가 mysteryhou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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