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빈부격차는 외환위기 이후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한번 빈곤에 빠지면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빈곤층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6%에 불과합니다. ” 최근 '빈곤의 정의와 규모’라는 논문을 발표해 화제를 모았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대일 교수는 한국의 빈곤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김 교수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빈곤이 세습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사교육비 지출 규모를 분석해 이를 확인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는 고소득층과 빈곤층의 사교육비 지출은 7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또 빈곤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은 생계비 지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제안했다. 미디어다음은 11일 김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한국의 빈곤문제의 실태와 해결방안을 들어봤다.
다음은 김교수와의 일문일답.
|
“빈곤의 기준은 소득 아닌 지출 돼야”
-빈곤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는데 기존 개념과 어떤 차이가 있나.
지금까지 고소득층과 빈곤층을 나누는 기준은 주로 소득이었다. 그러나 소득을 기준으로 빈곤층을 파악하면 몇 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지난 달 수입은 50만원이고 이번 달 수입은 130만원인 4인 가구를 가정해 보자. 이 가정은 빈곤층을 결정하는 기준(4인 가족 최저생계비 105만원)에 따라 지난달은 빈곤 가정에 포함되고 이번 달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소득변동이 많은 가정의 경우 이 가정을 빈곤층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은퇴해 소득이 전혀 없지만 모아둔 재산이 20억원인 노부부를 가정해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빈곤층을 파악하면 이들은 소득이 전혀 없기 때문에 빈곤층에 포함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을 빈곤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한 것이 소득이 아닌 지출을 기준으로 빈곤층을 정의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소득이 다소 변하더라도 자신이 쓰던 만큼의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지출의 평균적인 규모가 있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실제 소비능력을 판단해 볼 수 있다.
빈곤의 기준을 소득으로 했을 때와 지출로 했을 때 빈곤층에 포함되는 사람의 수는 큰 변화가 없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가구가 빈곤층에 포함되느냐는 큰 차이를 보인다. 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자영업자의 빈곤율이 임금노동자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반면 지출을 기준으로 하면 정반대로 임금노동자의 빈곤율이 자영업자에 비해 높게 나타난다. 자영업자의 소득이 잘 파악되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빈곤 문제는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문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라고 비교해 말하기는 어렵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지니계수 (0에 가까울수록 평등,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인데 나라마다 이를 산정해 발표하는 기준이 달라 직접 비교하기 힘들다. 한국은 임금근로자 소득만을 가지고 계산하지만 외국은 임금근로자와 함께 자영업자, 무직자 등의 소득도 포함해 계산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안에서 소득불평등 상황이 개선되고 있는지 여부다. 외환위기 이후 소득불평등 현상은 확실히 심해지고 있다. 다양한 통계 지표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니계수는 97년 0.283에서 2000년 0.317로 증가했다. 소득이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97년에서 2000년까지 소득 수준 하위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근로소득은 3% 증가에 그쳤지만, 상위 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소득은 12% 증가했다. 또 94년 고졸자의 평균임금은 대졸자 평균임금의 76% 수준이었지만, 2000년에는 72% 수준으로 떨어졌다. 94년에는 소득 수준 상위 10%의 임금이 하위 10%의 임금보다 65%가 더 높았는데, 2000년에는 77% 더 높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고소득층과 빈곤층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계층의 차이가 커지고 있는 현상 역시 심각하지만 이번 연구에서 더 중요하게 본 것은 빈곤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빈곤에서 얼마나 쉽게 벗어날 수 있는가 였다. 100명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고정된 10명은 항상 가난하고 나머지 90명은 항상 부유한 것과 10명 정도가 가난하기는 한데 그 10명이 계속 변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국은 지금 ‘빈곤의 함정’에 빠져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빈곤에 한번 빠진 사람들이 계속 빈곤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빈곤에 빠진 사람들이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계속 빈곤에 머무르는 현상을 ‘빈곤의 함정’이라고 한다. 이 현상이 지속되면 계층의 양극화가 심해져 사회불안을 가져온다. 그래서 ‘빈곤의 함정’ 효과를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빈곤문제 해결의 중요한 요소다.
이번 연구에서 ‘빈곤탈출률’은 6%로 나타났다. 소비를 기준으로 한 빈곤층 탈출 가능성은 50%에 약간 못 미치지만 일시적인 변동 요인을 제거하면 빈곤 탈출 가능성은 30% 미만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또 빈곤층을 탈출한 가구 가운데 70~80%가 차상위 빈곤층으로 이동한다. 차상위 계층 이상으로 올라가 실질적으로 빈곤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6% 정도에 불과했다.
소비를 기준으로 ‘빈곤탈출률’을 계산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률이 늘었다거나 줄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6%는 결코 높은 수치라고 볼 수 없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빈곤의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높다 낮다고 말하기 전에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고 앞으로 빈곤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빈곤 세습의 원인은 사교육비 지출의 차이”
-보고서에서는 빈곤의 세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는데 빈곤의 세습은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보는가.
빈곤의 세습 현상을 파악하려면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소득을 함께 보여주는 자료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와 관련한 자료가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교육이다. 한국에서 교육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한 가정의 교육비 지출을 통해 부모의 소득이 자녀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교육비 지출이 클수록 더 좋은 교육을 받게 되고, 이에 따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결국 높은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고 본 것이다. 즉 이번 연구가 직접적으로 빈곤이 세습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교육비 지출을 통해 간접적으로 빈곤세습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간접적으로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2000년 소비지출을 기준으로 상위 10% 안에 드는 고소득층이 자녀 1인에게 지출하는 교육비는 매월 70만원인 반면 하위 10% 빈곤층의 월 지출 교육비는 10만원 미만이었다. 교육비 지출이 7배 이상 격차를 보였다. 그 만큼 빈곤이 교육을 통해 대물림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가난은 참을 수 있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다”
- 연구를 통해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었는데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그 동안 빈곤 문제의 대표적 해결책은 생계비 보조였다. 생계비 보조는 물론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단기간 고통을 덜어줄 뿐 장기적인 대책은 아니다. 행정적으로 쉽고 간단한 정책만이 시행됐다. 근본적인 대책은 그들 스스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생계비 보조만으로는 희망이 없다. 빈곤의 상태가 지속될 뿐이다. 가난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희망이 없는 것을 참을 수 없는 법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근로소득 이외에도 재산소득 등으로 돈을 벌 수 있지만 빈곤층은 오직 근로소득에만 의존해야 한다. 그래서 빈곤문제의 가장 좋은 해결책은 취업이다.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일자리는 투자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투자가 안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투자의 활성화가 빈곤의 대책이 될 것이다.
이와 함께 빈곤 세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공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연구에서 교육비 지출을 통해 빈곤이 세습된다고 보았는데 공교육비는 계층에 따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교육비의 차이가 빈부의 대물림을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얼마 전 OECD 국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 평가를 한 결과를 본적이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상당히 좋은 학업 성취도를 나타냈다. 여기서 주목할 만했던 것은 학생들의 설문조사 결과였다. 학교 선생님들의 사명의식과 의욕에 대한 평가에서 한국은 32개국 중 꼴지를 차지했다. 이 순위가 낮은 국가 일수록 사교육 참여가 높게 나타났다. 결국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을 낳고 있는 것이다.
각자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있는 인재로 키워낼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이 절실하다. 앞서 빈곤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취업이라고 했다. 좋은 직장에 안정적으로 취직을 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교육이다. 높은 사교육비 지출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지 않고서는 빈곤의 세습을 막을 수 없다. 공교육 강화를 통해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 앞으로 연구 계획은.
소득분배구조, 재분배정책, 실업 등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해왔다. 전공이 노동경제학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 것이지만 연구를 거듭할수록 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함을 발견하게 된다. 빈곤층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빈곤층을 실제로 찾아가서 봉사할 수도 있고,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 갈 생각이다. 앞으로도 이번 보고서와 같이 빈곤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활동을 통해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함을 알려나갈 생각이다.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