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401/200401040105.html
구이도 교수의 강의는 "선택 (choice)" 을 주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때로는 집단으로서 여러 가지 취사선택을 하게 되는데,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크고 작은 기회 비용 (opportunity cost) 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이러한 기회 비용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순순히 인정하고 직접 책임을 지기 보다는 만만한 상대에게 우리의 허물을 대신 뒤집어 씌움으로써 그 선택이 가져다 주는 혜택만을 사수하려고 애쓰기 십상이다. 구이도 교수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적 희생양 (social scapegoats)" 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중세의 마녀사냥을 생각해 보자. 중세 유럽 사회의 단일 종교 체제는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 사이의 반목으로 인해 발발한 30년 전쟁이 남긴 폐허를 비롯해 수많은 사회적 혼란을 낳았다. 이것을 신앙의 선택에 따른 일종의 기회 비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사회는 민중들의 불만을 마녀라는 희생양을 통해 일부 대리해소하였다. 마녀사냥은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마녀들에게 전가하고, 이들만 없애 버리면 공동체가 안정되리라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어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등 사회적 통합기제로서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구이도 교수는 이런 내용을 ‘악마의 선물’(The Gift of the Evil Deity)이라는 이야기를 통해 전달했다. 어느날 악마가 나타나 국가 원수에게 제안을 하나 한다고 하자. 악마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너희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다. 이 선물은 국민들의 삶을 편리하고 즐겁게 해 줄 수 있다. 대신, 매년 무작위로 선택된 젊은 남녀 1000 명의 생명을 가져갈 수 있게 해 다오.
구이도 교수는 말했다. "이 선물이 다름아닌 자동차라고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는 매년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지요." 교통사고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매년 국민들 중 천 명이 죽어간다는 생각에 오싹해진 국가 원수가 고민을 거듭하며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자, 악마는 사악한 잔꾀를 이용해 달콤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마음에 걸린다면 내 선심을 쓰지. 매년 머릿수를 정해 놓고 사람들을 데려가진 않겠어. 국민들의 자유 의사를 존중할께. 이 선물의 특징은, 재미있고 스릴감 넘칠수록 사람이 생명을 뺏겨 내 손아귀로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거든? 그러니 선물을 받기 싫으면 받지 않아도 되고, 선물이 위험해 보이면 안전장비를 설치하여 변형시켜도 좋아. 주의해서 사용하기만 하면 한 명도 죽지 않고 선물의 혜택만 누릴 수 있는 거야. 어떤가?
악마는 이렇게 말해 놓고 고개를 살짝 돌려 음흉스레 웃는다. 사람들이 이 선물의 유혹에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좋아한다. 자동차가 없는 생활을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악마의 선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것이 따지고 보면 살인 병기를 받아들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사람들은 쉬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악마의 말처럼 교통사고로 희생되는 사람의 수는 "이론상" 제로로 내려갈 수 있으니 자동차라는 물건 자체에 태생적인 결함이 있어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니라고 변명한다.
한편, 사람들은 에어백 등의 안전 장비를 사용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사고 시 운전자의 생명만은 보호해 주는 차를 개발해 낸다. 이 경우 이 차를 모는 운전자들이 악마에게 잡혀갈 확률은 낮아지나, 무방비 상태로 길을 건너던 사람이나 스쿨 버스를 타고 가던 어린 아이들, 그리고 이런 안전장비가 갖춰진 차를 구입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운전자 등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악마에게 잡혀갈 확률은 높아진다.
그러나 이렇게 안전지대로 내빼 버린 운전자들은 악마의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함으로써 다른 이들의 죽음을 앞당긴 자기 자신을 탓하고 죄의식을 느끼는 대신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저렇게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소형차를 타고 다니니 충돌사고에서 목숨을 건지지 못한 거 아니야! 돈을 좀 들여서 좋은 차를 타고 다닐 것이지." 피해는 피해대로 당하고 탓은 탓대로 듣는 것은 결국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화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면서 매 순간 선물을 놓고 악마와 떳떳하지 못한 교섭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일 로스쿨 시험에는 항상 정책질문(policy question)이라는 것이 나온다. 이는 "만약 여러분이 다음과 같은 법을 개정한다면 어떤 부분을 고칠 것이며, 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와 같은 문제를 말한다. 예일 로스쿨은 학생들이 졸업해 사회에 나가면 다른 사람이 만든 정책을 따르기만 해야 하는 위치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정책 입안 및 집행에 참여할 수 있는 지도자적 위치에 서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도자 양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교육을 시키려고 노력한다. 시험문제를 통해 학생으로 하여금 현행 법 제도를 초월하여 본인의 뜻을 펼쳐 보도록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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