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4일 토요일

외할아버지

  이번 관찰대상은 외할아버지.

  우리 외삼촌은 항상 조카들에게도 존대말을 쓰시는 데.

  누구 영향인지보니 외할아버지도 그런 말투를 쓰셨다.

  자신을 1인칭으로 말하지 않고 항상 "이 몸이", "이 사람이" 같은 3인칭 비슷한 식으로 말씀하시고

  항상 모두에게 연설하는 식으로 존대말을 쓰셨다.

  그리고 절대 명령어투를 하지 않으신다.

  우리 아버지는 항상 "**를 해라.", "**을 빨리 해라." 이런 말투이신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을 하는 것이 도리 아닌가?", "어험"

  지금까지 한 번도 주의깊게 듣지 않았던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자세히 들어봤는 데.

  일제시대 이야기를 주로하셨다.

  "일본놈들 아주 나쁜 것들이야.", "군인들(군사정권) 아주 미친놈들이다.", "지역차별 하지마"

  이게 주요 내용인데.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세상을 사신 분이셨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일본어도 잘하시고 리더쉽도 있으신 데 이제는 동네 노인회장이시다.;;

  1945년 8월 15일 남해의 한 섬에서 징용으로 끌려간 일본군대에서 해방을 맞으시고

  보름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다친 곳없이 한 번도 전투에 나간적 없이 해방을 맞이 한 것은 거의 기적.

  아주 운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해방 후에 2~3개월 백수생활을 하시다가 친척의 도움으로 면사무소 서기로 취직.

  소학교 출신으로는 이래적으로 면장님까지 되셨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까지 면장직을 하시다가

  퇴직하셨는 데. 보수적인 할아버지의 이미지와는 달리 군사정권을 매우 증오하셨다.

  그 후에 새마을 지도자 상이나 동네 유지로 전두환 정권때 작은 훈장도 받으셨다.

  고향 마을의 한자이름도 지으셨는 데. "복다리" 라고;; 복 복, 많을 다, 마을 리.

  농사꾼으로 지내시다가 광주로 10년 전에 이사오셔서 지금은 동네 노인정 회장.

  할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당부는 술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울 할아버지는 술을 엄청 잘 드시는 것 같다. 젊었을 때 많이 먹었더니 평생 몸이 안좋다는

  얘기를 하셨고 그 얘기 후에 아버지가 가져온 이강주 5잔을 원샷;;a

  동생과 나의 앞으로 진로를 얘기하던 중

  소학교 시절 친구들이 어떤 학교에 진학했는 지 말씀하셨는 데

  60년 전 일을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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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안의 지난 50년을 듣다보면 그리 권력이 있거나 힘이 있는 집안도 아니고

  엘리트 집안도 아니었고 학력도 사회의 평균 수준을 넘지 않는 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세대에는 소학교(초등학교) 졸, 서당의 훈장님.

  아버지 세대는 대부분 고졸 + 지방대졸 2명.

  하지만 학력에 비해서는 상당히 똑똑하고 리더쉽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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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외할아버지든 아버지든 어머니든 할머니든 나든.

  너무나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분위기나 제약, 환경에 맞는 음.. 그 프렉탈 도형같은 유사성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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