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4일 수요일

[펌]아들 때문에 공주가 되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보통 내 스스로에 대해 평균 이상의 점수는 주고 산다.

뭐, 이만하면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의 외모는 아니라도 미스코리아 발등 정도는 쓰다듬을 정도의 외모는 되지 않나 싶고(물론 막 세수를 마치고 나와 가장 뽀송뽀송할 때 거울 앞에서 내린 평가지만) 인간성도 콩쥐 정도는 아니라도 팥쥐 엄마보다는 약 2.5배 이상은 좋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재산? 거의 없지만 굶어본 일 없고 비 맞고 자본 적 없으면 된다 싶다. 결론적으로 말해 자랑스러울 건 없어도 부끄러울 것도 없으니 이만하면 평균이상의 점수를 준다한들 돌덩이를 맞을 것 같진 않다. 그런데 최근 나의 이 자존심에 ‘쩌억’하고 금이 간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다 자식 때문이다.

어느날 유치원에서 엄마를 초대하는 행사를 열게 되었다. 아이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초대장을 만들어와 건내왔다. 녀석이 기특하고 내 맘도 설레어 그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행사 전날, 아이가 내 앞에서 한숨을 푹 쉬었다.

“엄마, 내일 유치원에 올 때 머리 꼬불꼬불하게 하고 오면 안돼?”

머리를 꼬불꼬불하게 하고 오라니, 그거 혹시 파마를 말함인가?

“다른 엄마들은 다 머리가 꼬불꼬불한데 엄마만 안 꼬불꼬불하니까 이상해.”

아니, 이 녀석이 지금 이 찰랑찰랑한 생머리를 두고 타박을 하고 있단 말인가?

“다른 엄마들처럼 입술도 빨갛게 하고 눈도 파랗게 하고 예쁘게 하고 와. 알았지?”

입술은 빨갛고 눈은 파랗게? 그거 구미호 아니냐?

“엄마는 왜 반지랑 목걸이 같은 거 안 해? 그거 없어? 아빠한테 사달라고 그래.”

반지와 목걸이라면 장롱 속에서 8년 째 먼지 쓰고 자고 있는, 지금은 그 모양조차 기억나지 않는 결혼예물밖에 없는 나로선 상당히 타격이 큰 주문이었다. 아들은 마지막 결정타를 날렸다.

“돈 없으면 내 통장에서 꺼내서 사. 내 통장에 4만원 있잖어.”

문득 대학시절이 생각났다. 같은 과 남학생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원시소녀’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긴 생머리 덕분에 생긴 별명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그런 모습을 건강함의 상징으로 봐주었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화장을 한 날보다 안한 날이 훨씬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게으름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고 건강함으로 봐주는 사람도 있었다. 30대가 되고 애 엄마가 되고 하면서부터는 더더욱 화장을 안 하게 되었다. 아기를 키울 때는 화장 안한 얼굴로 맘껏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의 볼을 내 볼에 문지르는 그 느낌을 즐겼다.

“화장을 하고 파마를 해라”는 아이의 주문 앞에서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30년 넘게 살아온 나의 인생관, 가치관, 버릇, 익숙함 등등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는 실로 지난한 고민이었다. 폭탄선언을 한 당사자는 블록을 쌓느라 정신없고, 내 얘기를 전해들은 남편은 ‘푸하하’ 한번 웃고 텔레비전 보느라 다 잊은 눈치였지만 나 혼자 열심히 고민했다.

다음날 오후, 유치원 정문을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대강 묘사하자면 이렇다. 일단 머리는 최신 유행이라는 ‘디지탈 파마’에 간간이 노란색으로 ‘블리치’(부분적으로 염색하는 것)를 넣고, 얼굴은 하얗게 화장을 하고 하늘색 아이새도우에 붉은색 립스틱을 발랐다.

옷은 몇 년만에 꺼내 입은 친척 결혼식용 정장이었고 신은 역시 몇 년만에 하이힐이었다. (발뒤꿈치는 이때문에 다 까졌다) 물론 목과 손가락에는 팔년만에 드디어 세상 빛을 본 결혼예물 목걸이와 반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같은 반 엄마를 만날 때마다 우아한 각도로 목을 꺾어 인사를 했고 오고가는 목소리들은 다들 하이 소프라노였다. 나를 바라본 아이는 입이 헤 벌어져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귓속말로 전해들은 아이의 앙증맞은 고백을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대로 옮겨본다.

“엄마. 공주님 같애.”

그동안 아이에게 사준 공주 나오는 그림책들을 다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면 믿으시겠는가.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가 저토록 기뻐한다면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그날 저녁 잠자리에 들 때 아이는 마지막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엄마. 이 머리 내일 아침 되면 다시 반듯해지는 거 아니지?”

그래, 이 녀석아. 그렇게 안되니까 우리는 이걸 ‘빠마’라고 부르는 것이다. 알겠냐?

지금 내 머리는 다시 생머리로 돌아가 있다. 물론 맨 얼굴이다. 인생의 화려한 날들을 매일 연출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언젠가는 내 입으로 미용사에게 ‘최대한 안 풀리게 빠글빠글 해주세요’라고 주문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갈수록 늘어나는 잡티와 주근깨, 기미, 주름살을 가리기 위해서라도 나는 화장대 위에 앉아 부지런히 분가루를 바르게 될 것이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다. 화장 곱게 한 얼굴이건 맨 얼굴이건 간에 자기 얼굴은 자기가 알아서 선택하는 일에 존중을 해줄 줄 아는,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그런 ‘분위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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