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28일 일요일

주말과 산책(Walking)

오늘도 9시 반쯤에 일어났다.
주말에는 항상 그 시간에 깬다.
몇 시에 잤는 지는 중요치 않다. 아무튼 그 시간에 일어나게 된다.
평일에도 그렇지만 주말에는 특히나 늦게 일어나면 화가 난다.
더 잘 수도 있지만 화가 나서 일어나는 거다.
이런 황금 같은 주말을 잠으로 보내는 내 자신이 너무 싫으니까.


룸메들은 물론 12시 반까지 아무도 안 일어난다.
그 3시간의 갭이 나를 더 괴롭게 한다.
이 집은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편이라 일어나면 불을 켜야 하는 데,
불을 켜고 빛 받으면서 내 몸의 호르몬과 뇌를 활성화시키거나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룸메들이 자니까;;
뭐 그냥 깨울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 가장 예민한 내가 잘 때 다른 룸메들이
불을 켠다면 그것도 비극이니까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그렇게 안하는 게 좋다.
TV를 켜봤자 별로 볼 것도 없고
수영장을 가기에는 약간 어색하기도 한 시간이다.
(혼자 가기 싫다.. 애들 한 명은 끌고가야..)


그렇게 우울하게 3시간쯤 보내면 룸메들이 배가 고파서 하나씩 일어난다.
부시시하게 일단 점심을 어떻게든 먹고
(라면 절반 + 식은 밥 절반)
세수를 한다.

그리고 다시 암울... 도무지 할 일이 없다.
어떻게든 밖에 나가는 게 좋은 데, 딱히 갈 곳도 없고 회사에 가게 된다.
그럼 일이 바빠서 나왔든 나처럼 갈 곳이 없어서 나왔든 회사에는 사람들이
한, 두명있다. 자기들도 나와있으면서 내게 눈치를 준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 주에는 헌책을 잔뜩 샀기 때문에 소설책을 한 권 다 읽었다.
그리고 5시 반쯤.
너무 미칠 것 같아서 집 밖으로 나왔다.
평소에는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산책을 나섰다.
항상 회사가 있는 코엑스 쪽만 가봤는 데, 이번에는 선릉공원쪽으로 가봤다.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되는 데 그 쪽은 왜 안가봤나 모르겠다.
아무튼 길 하나 건넜더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서울 강남의 분주함은 전혀없고 - 테헤란로, 코엑스, 강남역같은 -
주거 지역이 펼쳐졌다. 건물들도 대부분 2~5층, 집집마다 문패도 하나씩 붙어있고
정육점, 세탁소, 미장원, 슈퍼마켓 여러개, 만화방.
고향 우리집 근처랑 너무 비슷한 분위기(건물 높이, 배치, 소음 정도, 골목길의 크기)의 주거지역이었다.
그리고 걸어가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아주 고요했다.
조용히 살기에는 딱 좋은 동네인 것 같다.
한 10분쯤 걸으니 선릉 공원도 나왔다.
공원마저도 광주랑 비슷하군. 우리집 근처에도 광주 중앙공원이있었는 데 말이지.

선릉공원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지도상으로 보건데, 강남에서 88올림픽공원 다음으로 큰 공원인 것 같다.
당연히 왕의 무덤이니까 사람도 없고 조용하고 좋은 곳 일 것 같다.
다음 주말에는 꼭 가봐야지.


그렇게 1시간 정도 골목을 샅샅이 뒤지면서 걸어다녔더니
온몸에 혈액 순환(blood circulation)도 되면서 뇌와 엉덩이에만 몰려있는 고인 피들이
다른 곳으로 잘 퍼져갔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