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7일 일요일

지위와 역할

지위 : status - 계급적 위치(상, 하)
역할 : role - 비계급적 위치

한국사회의 문제는 모든 사람들을 역할이 아닌 지위로 보는 것에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어떤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일반인(비공무원, 시민)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그들을 관리하고 통치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공무원은 국가를 지속시키고 국가의 구성원들을 돕는 역할인 것이지
그것이 더 높은 계급의 인간을 뜻하지는 않는 다.
고려나 조선 같은 전제주의적 국가에서는 관리가 지위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역할이다.

예를 더 들어보면, 똑똑하면 의사가 되고 덜 똑똑하면 요리사가 되고 멍청하면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 의학에 관심이 있고 소질이 있으면 의사가 되고,
요리를 잘하면 요리사가 되고,
순발력, 근력, 체력이 있으면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다.
직업의 평균 연봉이 많다거나 수능점수가 높다고 해서 그 직업이 다른 직업에 비해 계급적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
의사가 요리를 쉽게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에서 부여되는 직위(대리-과장-부장 등..)도 사실은 역할이다.
사원으로써 중간 관리자로써 각자의 역할에 알맞기 때문에 그를 그곳에 배치한 것이지 단순한 계급적인 의식으로 부장은 대리보다 모든 면에서 능력이 우수하다고 할 수는 없다.
부장은 manage를 잘하지만 패기나 육체적인 힘은 부족할 수도 있고,
대리는 실무에 능숙한 열정과 패기(주로 젊으니까)가 더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동일 직업군내에서의 연공서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물론 신입생(1년차)보다 3년차가 대부분의 경우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일을 잘 해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0년차와 12년차, 18년차와 20년차간의 경험의 차이는 거의 없다.
각자 자신만의 경험이나 노하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나이가 가장 큰 문제이다.
비록 나는 26살이고 어떤 사람은 50살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에게 사회적 선배(senior)로써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그가 모든 분야에서 나보다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고 더 나은 결정을 내린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에 그는 컴퓨터를 써본지 2년 밖에 안 되었고, 나는 15년 이상 컴퓨터를 썼다면
그 분야에서는 내가 더 나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처럼 미분화사회(모든 사람이 비슷한 일을 하고 전문영역이 많지 않던 사회)에서는
연령이라는 단순한 숫자가 경험의 크기를 말해줄 수 있었지만,
현대사회처럼 다양한 전문영역이 있고 각자가 할 수 있는 경험의 방향이 다른 시대에는
연령이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공부 못하면 길거리에서 청소부나 되야 해", "삼류 딴따라가 되서, 몸팔고 약이나 할셈이냐?" 같은 말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
청소도 전문영역으로 연구해서 몇 억의 연봉을 받고 남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담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핵폐기물이라든지, 건설 폭파해체라든지, 폭설시 빙판길 제거, 고층빌딩 창문청소 등..)

농업의 예를 들어도 그렇다. 한국사회에서 농업은 다른 것을 배울 능력이 없고 재산이 없는 늙은 사람들이 낙후된 시골에서 골빠지게 호미질하고 낫질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농업은 매우 중요한 산업이고 전문적, 과학적인 분야이다.
생물학 중에서도 식물학과 연결이 되서 분자생물학적 지식을 통해 내성연구, 유전자변형식물(GMO)연구도 하고,
기후의 관찰과 예측, 토양의 관리도 필요하다.
또한 수요, 공급을 1년 혹은 몇 년전에 예측해서 정밀하게 시장을 control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의 농업은 몬산토, 카길 같은 거대한 기업들이 그런 방법을 통해서 운영하고 있고
엄청난 이익을 낳고 있다.
농업이라는 분야 자체가 loser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농업이 낙후되어 있는 것일 뿐이다.

세상 모든 것은 지위로 보지말고 역할로 생각해서 각자 역할을 인정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돈을 새는 업무는 cashier(경리)라고 부르지만 회계를 도입하면 회계사가 되고
돈을 관리하는 지식과 능력을 더하면 투자가나 재무사 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직업이나 산업을 좋은 것, 나쁜 것으로 나누고, 일렬로 줄을 새우고, 사람도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은 그 직업을 가지는 생산자나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 모두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비유를 들자면 초등학생이 이렇게 묻는 것처럼 유치한 것이다.
"모짜르트와 아인슈타인 중 누가 더 똑똑해요?"
"빌게이츠와 여불위 중 누가 더 부자인가요?"
"당태조와 링컨 중에 누가 더 정치를 잘할까요?"
"악어랑 호랑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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