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1일 일요일

타지생활

집에 왔더니 여기가 더 적응이 안된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 집에서 살았던 기간은 6년.
기숙사에서 친구와 함께 살았던 기간은 7년이다.


대학 입시 기간에도 집에서는 전혀 면학분위기가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을 오래한 것이 오히려 공부에는 도움이 된 것 같다.
먹을 것이 끊임없이 제공되고 TV는 하루 종일 켜져있다.
컴퓨터든 책이든 모두 거실에 있고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방음을 바랄 수도 없다.
문을 활짝 열고 있어야 한다.


cyworld에 들어갈 때마다 밖에 외출을 할 때마다 엄마가 묻는 다.
"이 여자는 누구냐?"
"누구 만나고 왔냐?"
대략 중~대학교 학력, 나이, 성별, 집안내력 같은 프로필을 뽑아줘야 한다.
심지어는 인터넷 신문기사의 사진을 보고도 친한 여자냐고 묻는 다. (연예인인데.)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할 수도 없고, 먹을 시간을 정할 수도 없다.
(차려주면 먹는 거지.)
기숙사보다 더 갖혀있는 기분이다.


집에서 내 책을 놓을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2주간 집안 정리를 했다.
옷 놓을 공간은 50% 쯤 확보했으나 내 방은 아니다.
내 공간에 내 물건을 놓기를 원했는 데,
내 방은 공용 공간이 되었고, 내 물건은 다른 곳에 놓아야 했다.
내 방이지만 물건 배치를 바꿀 수도 없고, 내 것이 아닌 것을 다른 곳으로 치울 수도 없다.


24살인데, 12살 취급을 받고 있다. 여러모로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안해도 되는 곳이지만 달리 말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부모님이 안 계실 때 요리를 해먹으려고 했는 데, 고추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항상 해주는 밥만 먹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만들 기회가 없었다.
결국 냉장고, 냉동고, 김치 냉장고, 찬장, 서랍을 모두 뒤졌지만 못 찾았다.
어머니만의 방법으로 불투명한 용기에 담겨서 어딘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는 물건도 찾을 수 없으니, 별로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다.


골라주고 다려놓은 옷을 입어야 하고, 낮잠 잘 때도 나지막히 들려오는 압박.;


어머니, 아버지는 나이드시면서 더 과거를 동경하신다.
TV 프로도 농사 짓는 것이나 들판, 숲이 가득 나오는 프로만 보신다.
옛날 물건이 나오는 '진품명품'같은 프로라든지.
'전원일기'류의 프로.
심지어 아파트 근처에 밭도 개간하셔서 매일 밭을 매러가신다.
점점 경제나 최신 뉴스에는 멀어지시는 것 같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난 건 어찌보면 잘 한 것 같다.
독립심도 길러지고 부모의 그늘에서 일찍 벗어나 어른이 될 수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계속 의지만 한다면 그의 그늘에 갖히고 그보다 큰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몸은 이곳이 편하지만 마음은 나가서 살 때가 더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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