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반 동안의 서울 생활(산업기능요원, 회사),
35일간의 유럽여행,
아버지의 창업과 어머니의 조언.
이것들이 또 한 번 내 인생을 바꾸게 할 것들이다.
대학 1학년 때까지 인생에 큰 선택은 사실 없었다.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 왔다.
내가 잘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그것을 하면 됐다.
내신으로 초,중,고,대를 다 들어가고 학교에서 시키는 공부를 하고
엄마가 주는 밥, 기숙사에서 주는 밥을 먹으면 됐다.
대학 2학년이 되던 첫 날 전공을 한 번 바꿨다.
물리학 -> 전산학
교수 다섯 분의 수강변경 싸인으로 한나절만에 내 전공은 전산이 되었다.
대학 3학년 여름, 혼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 가봤다.
학교 게시판의 2줄짜리 구인 광고를 보고 짐 1상자를 가지고 왔다.
잘 곳이 어딘지, 그 다음날 뭘해야할 지 아무것도 모른채로 가기는 처음이었다.
빌딩 숲(forest)이 빌딩 성(castle)처럼 보였다.
대학 3학년 겨울, 기숙사 창 밖으로 첫눈이 왔다.
다시 한 번 서울에 가기로 결심했다. 대전에서 살았던 것만큼 오래.
학부 2호관 빈 강의실에 혼자 앉아 다시 전화를 받았다.
"주현성씨 서울로 다시 한 번 오게 되었군요. 축하합니다."
회사 1년차,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나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어?"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매일 유심히 관찰했다.
그들이 하는 것 중에 배울만한 것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회사 2년차.
"이런 책도 읽어보도록 해."
그 날부터 책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책장이 가득 찰만큼 책을 많이 샀다.
외국에 처음 나가봤다.
거기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곳이었다.
산소 30%, 질소 70%.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8,000Km 떨어진 곳에 있다.
지하철이 끊겨서 숙소를 찾는 데 4시간이나 걸렸다.
말이 안 통해도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다시 학교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무슨 짓을 하지?
전공을 또 바꿀 것 같다. 졸업은 전산과로 할꺼다.
대학원을 다른 곳으로 써볼 것 같다.
그래서 특별히 지금 하는 것이 있나? 없다.
지난 2년간 서서히 변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새로 샀던 책의 절반은 그대로 나무토막으로 변할 테니, 아깝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습관 하나에도 지난 5년간의 전공은 그대로 남아있다.
지난 5년 동안에도 20년 동안 나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니까.
토이의 노래처럼 스케치북에 칠하고 있는 거다.
다만 다른 색을 그 위에 덧칠하는 것이지, 원래 색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는 다.
CTO나 CIO가 되려고 당분간 깝죽거릴 것 같다.
마케팅, 경영 책도 보고, 주식 투자도 해보고,
내일은 법원 부동산 경매도 구경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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