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7일 월요일

남자

어려서부터, 아마도 5~6살 때인가.
그 때도 별로 남자로 태어난 게 기쁘지가 않았다.
트랜스 젠더나 뭐 그런 문제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회가 싫었다.


"너는 남자 아이니까 씩씩해야 하고 아파도 울면 안돼."
"너는 장남이니까 책임을 많이 져야 해."
5~6살짜리에게 이런 말들은 참 부담이 많이 됐다.
남들보다 허약한 편이라 아프기도 잘하고 내성적이라 책임지는 걸 싫어하는 데,
자꾸 그런 말을 하니까 말이다.
특히 명절 때 더 싫었는 데, 명절이 되면 그런 소리를 수십배 많이 들으니까.


"장남이니까 뭘 해도 더 잘해야 해"
"너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실망했다. 남자가 되서 그런 것도 못하다니."
이런 것들이 완벽주의를 낳고 1등할 자신이 없는 일을 시작할 수 없게 만든다.


형평성의 문제에서도 그렇다.
장남은 역시 보상이나 기회를 많이 보장 받는 다.
어른들이 확실히 티가 나게 잘 해준다.
음식을 줘도 하나 더 주고 용돈을 줘도 더 주신다.


동생이나 사촌 동생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똑같은 손자, 손녀인데, 누구만 더 받으니 말이다.


배부른데도 하나 더 먹어야 된다.
할머니들은 항상 큰 손자에게 먹을 걸 가장 많이 준다.
위장도 안 좋아서 항상 배탈난다.


어려서 부터 화를 낼 때면 가장 많이 하던 말도 이런 것들이었던 것 같다.
"제발 내버려 두세요."
"알아서 잘 할 수 있어요."
"가끔은 실수 할 때도 있는 거 아니예요?"


동생이나 사촌동생들을 싫어했던 이유도 그랬던 것 같다.
명절마다 5,000원 더 받고 떡 하나 더 얻어 먹는 댓가로
평생 책임져야할 짐이 그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형이나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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