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9일 수요일

문화적 충격

새로운 환경이나 집단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되는 데,
사소한 것일 때도 있고, 적응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재미있을 때도 있고 그렇다.


초등학교 때는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성적이 오를 때마다 부모님이 선물을 사주신다는 말을 듣고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10등 오르면 오락 게임 1개, 1등하면 오락 게임기 한 대
뭐 이런식이라는 데,
우리 집안의 방식과는 많이 달라서 말이지.
대략 우리 집안의 방식은 100점이면 그냥 본전이고
그 이하는 무조건 기대에 못 치는 거니 혼나든지,
다음번에 분발해야 된다는 뭐 그런거 였다.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엄마 없이도 혼자서 밥도 차려먹고 하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집은 항상 엄마가 있는 데.


우리집은 가부장적인 곳인데,
다른 집에 가면 엄마 목소리가 더 큰 곳도 있어서,
TV 뿐만 아니라 현실에도 그런 가정들이 있구나 생각했다.


중학교 때는 불량한 친구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그리 질 나쁜 친구들이 많지 않았는 데,
하루 종일 욕만 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어느날 부터인가는 화장실이 온통 뿌옅게 흡연자가 수십명이 되고.
여자친구도 하나씩 생기고 말이지.
촌스러운 초등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남자, 여자는 일종의 적 같은 건데.
투표할 때 남자들은 남자 후보만 찍고, 여자들은 여자 후보만 찍고
놀 때도 따로 놀고, 고무줄이나 가끔 끊어먹고 울리고, 뭐 그런거..


그리고 초등학교 교육 스타일이 새마을운동 같다면
중학교 교육 스타일은 일제시대 같다고나 할까.


고등학교는 중학교랑 달리 선생님들이 때리지 않아서 많이 신기했던 것 같다.
매 안 들어도 공부할 애들은 다 하고 그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트 의식도 제일 많이 가졌던 것 같다.
친구들끼리 생일 때 선물도 주고, 크리스마스에 카드 보내는 것도 신기하고.
남자들은 원래 그런거 잘 안하는 데, 여자애들이 주도를 해서 많이 쓴 것 같다.


대학에서는 동아리가 상당히 재미있었는 데,
선배하면 왠지 거리감이 있고 그랬는 데, 그런게 많이 없어졌다.
2~3학년 쯤 되고 분위기도 편하고 가족같은 동아리에 들어가니,
'선배님'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형', '나이 한, 두살 많은 친구' 같은 생각이 더 든다.
사람을 만날 때 미리 약속을 하고 시간을 내야 한다는 것도 신기하고 말이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항상 보는 친구들이니 따로 약속할 필요가 없었는 데,
대학에서는 따로 시간을 내서 동아리도 가고 해야 친구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선, 후배들과 대화를 하려면 야식이나 식사라도 같이 해야 되고 말이다.
회사 들어와서는 정말 사람들을 만나려면 일주일 전에는 약속하고
1시간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다.


네오위즈라는 회사도 참 독특하다.
TV에서 보는 일반적인 기업들을 생각하고 권위적인 모습들을 많이 생각하는 데,
마치 동아리와 회사의 중간쯤 되는 분위기가 신기하다.


음..
전체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는 것은 한살 한살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거다.
나는 계속 어린 생각과 문화에 머물러 있는 데,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면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어른다운 행동을 하고 있다.
키가 키고, 양보할 줄 알게 되고, 여자친구가 생기고, 담배를 피고, 술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식사 약속을 하고, 다른 사람을 어른으로 대접해주고, 선물을 주고, 편지를 쓰고, 차를 사고..


아무튼 이런 것들에서 남들보다 내가 좀 뒤지는 편이다.
철이 늦게 드는 사람인가보다.
남들이 하는 것들을 보고
'아, 나도 저들처럼 어른이 되야 겠구나. 나만 되게 유치하네.'
이런 생각을 매년 한다.


회사에 처음들어 갔을 때도 나는 연봉 협상을 할 때
"주는 대로 받지요." 이렇게 소심하게 나왔는 데.
나름대로 어른답게 협상을 잘 해서 권리를 챙기는 친구들도 나오고 말이지.


나는 여자친구도 없는 데, 어떤 친구는 결혼을 하고,


나는 세수도 대충 비누 하나 사서 하는 데,
어느날부터 보니 다들 폼 클랜저, 스크럽, 스킨, 로션, 핸드크림 뭐 이런거 쓰고.


머리도 대충 샴푸로 감으면 땡인데,
신경쓰는 친구들은 샴푸, 린스, 에센스, 염색, 파마, 왁스 뭐 이런 것도 쓴다고 하고.
(다 큰 어른이나 날라리들만 쓴다고 생각했는 데.)


대충 짤랑거리면서 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 데,
센스있는 친구들은 지갑이라는 걸들고 다니더라구.


집에서 배고플 때, 1,000원씩 용돈타서 과자 사먹는 데,
어떤 친구는 어느날 지갑에서 수표라는 걸 꺼내더니, sign을 하고 물건을 하더라구.


나는 초등학생들처럼 엄마가 골라주는 옷 입고 다니는 데,
친구들은 세련되고 멋진 메이커 옷도 사입고 말이지.


너무 모범생처럼 살아서 그런건가보다.
"현성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메이커 타령도 안하고 철들었어. 얼마나 말을 잘 듣는 다고."
라고 어른들이 칭찬했을 때, 정말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는 데.
지금보면 아닌 것 같다.
메이커 타령하는 친구들이 어려서부터 멋쟁이가 되서
요즘도 더 잘 입고 다니더라구 자신감도 더 있고.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더 잘 알고.
코디도 잘하고, 사회생활도 잘하고, 여기저기 인맥도 넓고 좋은 기회들도 잘 잡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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