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1일 일요일

협상

  되게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디만 잘하고 10분만 버텨도 한, 두달 월급 정도는 왔다갔다 하는 것을..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는 것 같고 나중에는 인생을 바꿀 지도 모른다.
  (취직 협상 같은 거라면..)

  이번에는 좀 조르고 빌던지a 협박을 하던지. 인센티브라도 좀 받아봐야지.

  @@ 이런 바보//


  --

  생각해보면 협상 따위는 없는 집안과 사회 속에서 태어난 것 같다.

  명령과 복종 밖에 없고 0 아니면 1. 중간은 없다.

  1등과 나머지들 밖에 존재하지 않고

  만점과 실패한 것들 밖에 없다.

  아버지와 대화를 할 때는 항상 그랬다.

  "어디 놀러가고 싶냐?"

  "xxx 요."

  "그래 그럼 yyy 가자."

  "xxx 가요"

  "대안은 없다. yyy아니면 안가."

  아버지에게는 자식들의 목소리는 절대 들리지 않는 다. "예", "아니오" 두 마디 외에는...

  20살이 넘었는 데도 혼자 옷 사는 건 못하겠다. 작년까지 그런 기회조차 주어진 적이 없었으니까.

  내 동생은 항상 아버지께 옷 사게 얼마 주세요. 하는 데.

  아버지는..

  "엄마랑 같이 가서 사와. 오늘 저녁까지 안 사면 내일은 없다."

  "돈 받아서 내일 친구랑 가서 사면 안되요?"

  "안돼. 내일은 없어. 오늘 지금. 엄마랑 사오는 게 유일한 기회야."

  우리는 항상 1지 선다형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강요된 삶 속에 노는 법도 모르고 웃는 법도 모르고 협상하는 법도 모르는 바보가 되버렸다.


  주말인데. 드는 생각은 딱 하나다. "시간은 아까운거야. 영어 공부해/"

  22살인데. 왜 이러지?

  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모건 프리만처럼 자유가 주어졌지만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는 것 같다.

  화장실 갈 때마다 누구에게 물어보고 허락을 받지 못하면 가지 못하는 상태.

  모건 프리만 : "저 화장실에 가도 될까요?"

  회사 상관 : "이봐요. 당신은 자유인이야. 이제 죄수가 아니잖아. 가고 싶으면 아무때나 가요.
                  내게 허락 받지 않아도 된다구. 아 거참 귀찮네."

댓글 5개:

  1. 주말에 노는 건 별로 기쁘지 않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주말에도 학원에 다녔으니까.

    수학 아니면 영어. 초등학교 3~6학년 때까지는 컴퓨터 였군.

    웃기는 건. 초등학교 때 주말에 학원가야겠다고 결정한건 나였다.

    부모님은 아주 대견스러워 하셨다.

    학원가서 뭐했냐면 아는 문제 또 풀고 또 풀고 아는 프로그램 또 짜고 또 짜고

    어떤 문제를 갖다줘도 나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빨리 푸는 학생이었다.

    도전적인 건 하나도 없었다. 단지 푸는 시간을 단축하는 데 썼다.

    나중에는 무슨 생각을 했냐면.

    2등보다 2배 빨리 풀기. 질문이 끝나는 순간에 대답하기.

    눈 감고 풀기, 잠자면서 생각하기... 온갖 미친짓들



    대학에 와서 모르는 문제들이 계속 될 때 얼마나 무서웠는 지

    모두들 나보다 잘 했을 때 얼마나 힘들었는 지

    결국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잤다.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그래도 어머니는 달랐다.

    "너하고 싶은 걸 하렴."

    "제발 TV좀 그만보고 나가서 뛰기도 하고"

    "여자친구도 사귀어 보렴"

    "가서 친구랑 옷도 사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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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다.

    게임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으니까.

    나는 내가 지는 게임을 해본 적이 없다.

    항상 이기니까.

    내가 못하는 영어, 체육 이런 건 절대 안했다. 내가 못 이긴다고 생각했으니까.

    수학만 했다. 수학은 고등학교 때까지 반에서 1등 안해본 적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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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프로그래밍도 정말 두려웠다.

    영화를 봐라. 1분안에 해킹 못하는 해커는 한 명도 없다.

    주인공은 넘어지면서도 총알을 피하지 그냥 실수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프로그래머의 작업시간 중 90%는 유지보수에 쓰고

    나머지 10%의 90%도 구현중에 에러나서 고치는 일이다.

    실제 개념잡고 생각해서 치는 시간은 1%, 문제난 곳 찾아다니고 컴파일하고

    에러 메시지 뒤지고 하는 시간이 99%다.



    99%의 시간 동안 얼마나 괴로운지 모른다.

    지는 법이나 참는 법, 그런 건 안 배웠으니까.



    하지만 이 직업은 지는 법, 실패하는 법, 참는 법을 알아야 한다.

    만약에 절대 고장나지 않고 절대 실수하지 않고 절대 문제없는 하드웨어, 소프프웨어가 있다면 프로그래머 중에 99.9%는 해고 당하고 컴퓨터 회사는 1개빼고 다 망하고 만다. 크기도 수십배 작아지고 속도도 수 백배 빨라질 것이다.



    프로그래머 아닌 회사 임원이 팀장한테 물었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왜 버그가 생겨요? 그게 도대체 뭐예요? 그런거 왜 생기는 거예요?"

    할 말 없었다고 한다.



    나도 실수를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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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울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보면 개그 콘서트에 나오는 코메디 코너 하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4명이 나와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다.

    한 사람은 스포츠, 한 사람은 상품 광고, 한 사람은 동물의 왕국, 마지막 사람은 동화 구현.

    서로 이야기가 그럴 듯하게 이어지는 데. 모두 다른 이야기다.



    아버지와 내가 대화 할 때도 그렇다. 자세히 들어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만 하고 있다.

    서로 independant한 말들. 항상 집에 가면 대화해 보려고 하는 데. 안된다.

    정말로 들리지 않나보다.

    과장된 표현이 아니고 진짜로 서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다.

    완전히 독립된 두 글이 그냥 섞여 있다.



    나도 아버지를 닮아가는 지 원래 닮아서 그런지. 내 자신이 하는 이야기도 계속 다른 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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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완벽한, 완전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싫다.



    완벽하고 완전하면 협상은 필요없는 거다.

    불완전하고 완벽하지 않으니까 협상을 하는 거다.



    협상은 최선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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