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선진문명와 후진문명는 존재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문화만을 놓고 볼 수 있는 어떤 객관적 잣대가 있는 것은 아니라
힘의 논리에 의해 한 쪽 문명이 패배했을 때, 그 문명을 후진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서양을 선진문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00년 전 서양열강과 동양의 맹주인 중국과의
전쟁에서 서양이 승리했기 때문에 패배의 댓가로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100년 전 어느날 하루 아침에 완벽하게 수용이 끝나고 동등한 문명을 누리게 된 것이 아니라
그 후로 100년동안 (그리고 미래에도 지속되도록)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할부금을 갚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정확히는 모르겠지만, 16~18세기일지도) 이전에 전쟁은 한 나라(혹은 문명)이 이기면 영토를 수복하고
완전히 그 국가(문명)으로 귀속되는 것이었지만 제국주의 이후의 전쟁은 그런 형태가 아닌 것이 되었다.
국가는 유지시키면서 할부금을 영구상환하는 좀 더 지능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국가 내부에서의 계급구조 대신 국가 간의 계급구조를 형성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서양을 배워야 한다고 강요받고 있고
그에 따른 수많은 비용들을 무역적, 비무역적으로 지불하고 있다.
이제는 그것이 거의 완전히 경제적 논리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무역수지, GDP per capita, 생산성 등의 수치적 지표로 표현되고 있을 따름이다.
또한 우리가 영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100년 전의 전쟁에서
동양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뭐 사실 한국의 입장에서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한자를 배워야 했겠지.)
'선진국'은 '앞서가는 나라'라는 뜻이라기 보다는 '앞에 서버린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서로 평행한 레이스선에서 달리기를 하는 독립적인 경주가 아니라 우리를 쓰러뜨리고, 자신들의 뒤에 서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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