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가 전문용어나 이상한 영어 같은 걸 많이 쓰는 건
일종의 보상심리인 것 같다.
우리 집안은 매우 평범한 전라도 집안이라서
세련되고 뭐 그런거 없다.
말 안 들면 하시는 말씀이
"콱 다리 몽둥이를 부러 뜨리기 전에 공부해라~잉~"
('잉~'에 엑센트가 있다.)
"확 내다 버릴까?"
"학교 떼려치고 공장에 쳐 넣어버릴까?"
뭐 이런 식의 협박을 듣고 컸다.
집에 오디오가 있기는 했지만 EBS교육방송 용으로 산거지,
뭔가 문화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것도 없고.
평생가도 가족끼리 극장이나 음악회, 오페라 그런거 가는 집도 아니다.
스포츠에도 무관심하고 음악도 안 듣고,
집에 그림도 거의 없다.
그보다는 좀 더 순박한 취미들이 있다.
울 엄마, 아빠 취미는 산책이나 농사같은 거다.
아파트 숲에 살지만 시골을 너무나 그리워 한다.
아파트 근처 공원 옆에 땅을 몇 평 얻어다가 상추, 시금치도 심고 고추도 심는 다.
집에도 엄마가 만들어둔 냉동고에 미숫가루가 몇 박스씩 있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났고 내성적이라서 완벽한 도시 사람이지만
(하지만 역시나 별로 세련되지는 않은..)
우리 부모님은 반은 시골사람이다.
20살에 도시에 처음 올라오신 분들이다.
항상 집에 가면 고추, 깨 뭐 그런 것들을 베란다에 말린다.
화분도 몇 개씩 있다.
70~80년대 유행하던 분재, 수석, 멋진 나무 조각, 박재
이런 것들을 아직도 좋아하신다.
그 때 당시 영화를 보면 권력층들 집에 있는 그런 것들 말이다.
잠자리 선글라스가 유행하고 컬러 TV가 막 나오던 시절.
우리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는 데도 사실은 엔지니어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 매니저라서 엄청나게 꼼꼼하다.
사소한 숫자도 3번씩 확인하시고 지시사항은 10번은 확인해야 된다.
작은 기업을 운영하기에는 손해도 안보고 매우 안정적이긴하다.
하지만 큰 기업을 운영하시기는 힘드실 것 같다.
회계사를 고용해서 기업 재무도 조언을 구하시는 것 같기는 한데.
카드를 사용하면 연말정산 때 세금 환급이 되는 건 잘 이용 안하시는 것 같다.
뭐든 무조건 현금 결제다.
어음을 주거나 받지 않아서 부도 위험이 없기도 하지만
부자의 기본인 세태크 같은 건 잘 모르신다.
직원들도 4년제 나온사람이 없다.
아버지가 주변에서는 제일 똑똑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거 잘 안 듣고 안 믿으신다.
정치, 경제면도 전혀 안보신다.
신문은 오로지 건설면, 그것도 전라도쪽 건설만 보시는 것 같다.
아직도 족보라든지, 가문의 일이라면 언제나 쫓아가신다.
상당히 유교적이다.
성격도 급하셔서 좀 더 알아보면 좋은 물건을 사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데도
마음 먹으신 날에 물건을 사야 한다.
10~20% 정도 더 비싸도 마음 먹은 날 안 사면 절대 안 사주신다.
무조건 현물로 사야지, 인터넷 구매라든지, 통신 판매는 절대 안된다.
신용카드, 인터넷 쇼핑몰, 전자상거래에 대한 불신도 대단하다.
불신의 정도가 거의 '다단계 판매'나 '해킹' 정도 이다.
현찰로 주고 받고 통장에 잉크로 찍혀야지,
인터넷 뱅킹으로 뜨는 돈을 안 믿으신다.
자동이체는 가끔 하시는 데, 텔레뱅킹도 안하신다.
홍대 근처 클럽이나 그런 곳만 다녀와도
'양아치' 혹은 '미친 x' 취급하신다.
집에 에어콘 하나 놓자고 주장해 봤는 데.
'냉동고', '김치냉장고'는 다 있어도 '에어콘'은 필요없단다.
그전에 '드럼 세탁기', '식기 건조대'를 먼저 사야한다나..
전기세 3만원 아끼려고 30~100만원 더 비싼 물건을 사기도 한다.
컴퓨터도 한 번 사두면 10년은 쓸 수 있는 물건으로 사려고 하신다.
가격대 성능비로 사고 1~2년 뒤에 업그레이드하는 게 최선이라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다.
5년전 200만원짜리 컴퓨터가 지금은 5만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20만원주고 그걸 고쳐서 쓰신다.
돼지 머리 놓고 고사 지내기 전에는 한 해 사업을 시작하지 않고
자동차 바꿀 때마다도 떡 사놓고 고사 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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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하고 성실하시긴 한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삶의 질', '경제적 효용', '기회 비용'
같은 것을 설명드리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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