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9일 수요일

TV와 경쟁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왜 보지 않는 지, 어쩌다 그 지경의 인간이 되었는 지도 여러번 구구절절한 사연을 밝혔지만 새로운 해명(explain)이 떠올랐다.

대중문화에 익숙해지다보면 상업주의에 휩쓸리게 되서 유행을 따라가게 된다.
남들과 같은 취미를 가지게되면 그들과 경쟁해야 하고 그렇다면 돈이 많이든다.
생물학적 지위(niche)가 같은 개체는 끝없이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반면 블루오션이론에 따르면 남과 경쟁하지 않는 것이 항상 최선이다.
(경제학의 '독점'이라든지, 손자병법의 '싸우지 않고 이긴다.'도 비슷한 얘기)

남들이 아직 깨닫지 못한 것,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은 상당한 잇점도 있고 불이익도 있다.
물론 '남들'이라고 해서 정말 세상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한다면 위대한 학자가 되겠지만 그정도까지는 아니고 일반 대중의 홍수만 피해도 경쟁이 상당히 적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그 놈의 TV가 문제다.
미국처럼 케이블 채널도 수백개 만들고 지역방송도 많이 하고 인종별, 정치성향별 이합집산도 끊임없이 일어나면 좋은 데, TV가 획일화를 더 강화시키고 있다.
뭐 결국 그게 한국 대중의 요구이고, 독재자들의 노력이었지만, 이제는 TV도 좀 달라져야지.
세상 어떤 집단도 2~3:1 이상의 경쟁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200:1 이라니. 특히 공무원시험들.
너무 낮은 경쟁률(1:1 이하)은 공산주의 사회처럼 나태한 사회를 만들지만 높은 경쟁률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들어서 역시 자원의 낭비이다. 200:1이면 50년간 노력해도 150명은 결국 합격 못하고 죽는거니까.

자꾸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만들어서 모두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되니 그런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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