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17일 목요일

소풍

내가 비보다 싫어하는 게 뭘까?
소풍인 것 같다.
소풍이 너무 가기 싫어서 비나오게 해달라고 빌었으니까.
하지만 초,중,고 11년 동안 소풍날 비온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 한번 비 왔는 데, 소풍을 끝내고 산을 내려올 때 왔었지.

이것도 n가지 이유가 있는 데,

1. 김밥
엄마의 창의력의 총체인 김밥에는 사연이 많다.
울 엄마는 세상 어떤 엄마들보다도 김밥을 자주 싸주신다.
누드김밥, 올챙이 김밥 등..
그 실험의 희생양으로 수많은 실패작들과 옆구리 터짐이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는 달그락거리고 무거우니까 알루미늄이나 1회용 얇은 플라스틱으로
싸가지고 갔었는 데, 초 1~4학년 때까지는 한번도 제대로된 김밥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항상 도시락이 찟어지고 뭉게져서 엉망이 되버렸다.

2. 땀
나는 운동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운동 안했다.)
땀 흘리는 것도 싫어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얼굴을 닦다보면 피부도 붓고 아프니까. 땀이 나도 뭔가로 잘 닦는게 안 된다. 어른들이라면 당연히 옆구리에 수건이라도 하나 들텐데, 초등학생은 그게 힘들다.
항상 소풍 후에는 땀띠로 고생한다.

3. 휴식
소풍을 수백명이 함께 가니까 쉬는 시간을 잘 안준다.
항상 체력의 한계점을 넘는 수준에서 쉬는 것 같다.
소풍 후에는 1주일간 몸이 쑤시고 감기도 잘 걸렸다.

4. 온도
점심만 되도 모든 것이 뜨거워져 버린다. 따뜻한 청량음료수는 뭐든 다 맛없다.
음료수도 맛없고, 콜라는 터지고, 물도 흐르고, 옷도 땀과 가방 속에서 터진 음료수로 다 젖어버린다.

5. 물 - 탈진
목은 마른데, 물을 마실 시간이 없다. 휴식시간을 잘 안주니까.
물을 많이 마시면 올라가는 동안 배탈라고 적게 마시면 목이 마르다.
엄마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항상 물을 얼려주셨는 데,
너무 잘 얼어서 소풍을 마치고 내려올때까지 얼음으로 남아있어서
전혀 마실 수가 없었다.
무거운 얼음덩어리는 왜 짊어지고 오는 지.

6. 벌레
지저분하고 벌레 많은 산으로만 다녀서 항상 뭔가 나를 물거나 쏜다.
벌에 쏘이거나 모기에 물리거나 송충이 등..
풀독에 옮기도 하고 피부를 베이기도 한다.

7. 장소
초등학교 때는 항상 무등산으로 갔다.
조선대 옆에 있는 깃대봉부터 중머리재 근처까지. 항상 거기.

8. 길
인솔자 수가 너무 적으니까 항상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과연 맞게 가고 있는 지, 얼마나 더 가야하는 지 몰라서 항상 불안했다.
매년 같은 곳을 가지만 구석구석에 샛길들도 있고,
나만 너무 많이 올라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9. 짐
어딜가든 나는 짐을 너무 많이 싼다. 소풍가는 날은 특히나 너무 무겁다.
엄마도 도시락을 항상 3개씩 싸주시는 데, 1개는 내꺼, 1개는 선생님,
마지막 1개는 도시락을 미쳐 준비하지 못할 친구를 위해.
하지만 11년간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항상 도시락은 남았다. 요즘 경제 사정이 좋아져서 부모세대처럼 그렇게 도시락 못 싸는 친구가 없다. 가끔 있긴한데, 선생님들이 다 숫자 미리 세서 도시락 주문해뒀다.

10. 부상
어딜가든 잘 넘어져서 무릎이 깨지고, 머리를 한 번쯤 박기 마련이다.
안경을 쓰게 된 이후로는 안경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넘어져서 안경 깨지면 집에 돌아가기 쉽지 않다.

11. 친구들
누군가 아프게 되있으니 (그게 나 일 때도 있고) 항상 괴롭다.
가기 싫은 친구 억지로 끌고 갈때도 있고, 내가 끌려가기도 하고.
그러면서 우정이 쌓였으면 좋겠지만, 미운정이 더 쌓인다.
서로 징징거리다보면 이런 웬수, 푼수들이 없다.

12. 노래자랑
휴양지에 왔으면 일상을 잊고 차분한 마음으로 인생을 돌아봤으면 하는 데,
항상 노래자랑을 시킨다. TV 틀면 최고의 가수들이 노래하는 걸 들을 수 있는 데
왜 그런 노래들을 들어줘야 할까? 들어주는 것도 고통이고, 뭔가 준비하는 것도 귀찮다.
어른들은 무슨 그런 유치한 재롱들을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
초등학생들보다 더 유치하다.

13. 선생님들
몇몇 선생님은 군기잡으려고 소풍와서도 기합을 주고, 술에 취해서 주무시는 선생님들도 있다. 사실 주무시는 선생님이 제일 좋다. 간섭 안하니까.

14. 화장실
놀러가면 항상 배탈이 나기 마련인데, 산에는 화장실이 없다.

댓글 1개:

  1. 탄산이 가득한 따뜻한 사이다는 정말 사람마음을 아프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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