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아저씨의 주장에서도 그렇고, 분석철학에서도 문제는 언어라고 한다.
무엇을 하든, 언어는 사람들을 괴롭힌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들은 'be동사'를 백만번쯤 언급한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한자의 아닐 非(비)자 인 줄 알았다.
그래서 '아 이건 동사가 아니라서 비동사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bee(곤충 벌)인 줄 알았고, 그 다음에도 몇 년간 혼란스러웠다.
현재, 과거, 미래시제에는 등장하지 않는 원형이었기 때문에
are, was, were 등을 모두 지칭하는 일종의 대표(대명사 같은)인 줄은 몰랐다.
가정법, 과거분사 따위를 배우기 전에는 영어문장 어디에도 be는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할 영어문법책은 어려운 내용을 더 어렵게 설명하고 있었다.
일본어를 한자만 한글로 바꿔서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에서는 쓰지 않는 한자어들만 난무했다.
'전치사'의 '전치'가 앞 전, 놓을 치(위치할때, 치)라는 걸 어떻게 아냐고?
영어공부하려고 했더니, 한자 풀이부터 시키다니.
수학에서도 비슷한 혼란은 계속됐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나름대로 잘 따라가고 있었지만
대학에 오면서 갑자기 너무나 많은 notation이 등장해버렸다.
더 심각한 점은 책마다 notation이 약간씩 달랐다는 점이다.
어떤 책에서는 vector를 bold체로 쓰고, 어떤 곳에서는 위에 화살표를 그리고, 글자를 두번 겹쳐쓰기도 하고, 읽을 수 조차 없는 그리스문자들을 쓰기도 했다.
같은 operator를 수많은 방식으로 서술하게 되면서 일물일어(한 가지 사물은 한 가지 단어로만 적는다.) 원칙이 깨져서 애먹었다.
그리고 그 심각성은 수학을 배우기 위해 영어로된 교과서를 봐야 했다는 데서 더 커져버렸다.
모르는 게 있어서 교과서를 있는 데, 영어 해석 자체가 나를 더 붙잡아 버렸다.
집합이 영어로는 'set'인데, 같은 건 알지만 심정적으로 '집합'과 'set'이 같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더구나 'set'은 명사로는 집합이지만 동사로는 뭔가 지정할 때 쓰인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아도 시원찮은 데,
하나를 배우면 모르는 게 10개는 더 나와버린다.
순환적 정의구조에 빠져서 사전을 아무리 찾아도 끝이 나지 않는 다.
우리는 이미 철학을 직접 배우기도 전에, 그런 철학적 문제(인식론, 실제론 등..)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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