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8일 수요일

랩 구경

개별연구 학생은 사실 랩에 들어가 있을 필요가 전혀없지만
방에 있으면 잠만 자고 하니까 랩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옆에 사람이 있으면 덜 우울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벽 속에 갖힌 좁은 곳에 배정되서 옆에 사람은 없다.

그래도 매끼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있으니 훨씬 낫다.
점심은 선배 차를 얻어타고 저 멀리 나가서 냉면을 먹고
저녁도 나가서 먹었다.
(그래도 다 먹고 내 자리로 돌아오는 데, 딱 1시간 밖에 안 걸리더군)

지난 이틀간은 시스템 설치로 씨름했다.
역시나 하드웨어 설치에 하루, 소프트웨어 설치에 하루는 변함이 없다.

뭐, 다들 남이 쓰던 물건과 쓰레기 더미를 치워내서 만든 임시 자리지만
14인치 LCD 듀얼에다가 컴퓨터 사양도 꽤 좋다.
(Pentium 4 2.2GHz, 메모리 2GB, 비디오 메모리 128M Nvidia FX5400던가?
하드도 SCSI인 것 같다.)
모니터는 좀 심하게 구린 편, 흔들리고 화면도 좀 이상하다.
해상도도 1024x768로 2개 다 놓고 쓰고 있다.

머리 위로 덕트에서 뜨거운 바람이 쉼없이 나와서 더운편이다.
덕트가 꽤 시끄럽다.
옆에는 21인치짜리 CRT 모니터(2048x1280의 해상도)가 달린 무슨 서버가 있다.
원래 그냥 전화기 놓은 책상이었는 데, 치우고 내게 자리를 줘서 그런지
가끔 사람들이 와서 좀 비켜보라고 하고 전화를 쓴다.

대학원생들을 보니 참 불쌍하다. 외모나 복장에 신경을 쓸 시간이 전혀 없는 것 같다. 확실히 년차 구분이 난다. 석1은 그래도 가장 양호한데,
박 4년차들을 보면 정말 츄리닝만 입고 다니는 선배도 있는 것 같다.
교수님이 매 시간마다 와서 뭔가 일을 시키시니 그렇다.;

예전에 다니던 회사처럼 중간에 tea time을 가지는 것도 없다.
교수님 안보실 때 한 5분 정도 잡담하고 있으면 교수님이 지나가시고
다들 쫄아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곳임에도
전산동 층별로 가운데 있는 탁자는 항상 비어있다.
방 = 6명
wing = 방 8개 = 48명(교수 2~3명)
층 = wing 3개 = 144명
전산동 = 층 3개 = 432명

빈 방도 있으니 한 300명은 될텐데, 그렇게 조용하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다들 눈치보면서 연구만 하나보다.

그리고 랩들은 상당히 지저분한 편이다.
회사는 누가 청소라도 해주는 데, 랩은 그냥 안하는 것 같다.
먼지가 수북하고 창이 작아서 환기도 안된다.
선도 이리저리 마음대로 나있고 자리 배치도 그럭저럭 되있다.

4층은 그래도 신축이라 깨끗하고 사람도 적고 가구도 새거고 입주한지 얼마 안되서 쾌적한 편이다.
(주로 젊은 교수님들이 또 4층에 많다. 새로 생겼으니.)
3층 쯤 되고 역사가 오래된 랩들은 랩이 생긴 이후로 거의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 종일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고 칭찬 받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교수님이 내가 거기 앉아있다는 사실을 모르셨나보다.
아무튼 이제 알게 되셨으니 출석체크 명단에 포함될 듯.
뭐 내가 그 랩에 아는 사람도 없고 앉아있는 것 외에 달리 할 것이 없다.

개별연구 주제는 10초만에 정해졌다.
역시 경력이 많으신 교수님답게 학생에게 주제를 정하게 하시는 번거로움 따위는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석사 1학년 CG과목 플젝으로 나오는 3문제를 너도 2개월간 풀어와라."
지난 학기 조교를 맡았던 박사과정 형이 홈페이지를 보여줬다.
결국 그냥 수업 하나 듣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 됐다.
약간 다른 점이라면 혼자 자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

난감한 점은 사람들이 내게 와서 다들 이렇게 묻는 다.
"다음학기에 이 랩에 석사 1년차로 들어오는 거예요?"
"왜 벌써 들어왔어요? 인생을 즐기면서 놀아야지."
"00학번이면 5학년이예요? 6,7학년?"
"군대 이미 마친거예요?"
모두 대답하기 번거롭다.
병특을 했다는 사실이나 복학생이라는 점, 내년에도 석사가 되지는 않는 다는 점.
그 랩에 갈지도 잘 모르겠다는 점.;
(서울대가 더 좋지 않을 까?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고.)

그리고 역시 랩 사람들도 대학원생이지만 학부생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건 비슷한 것 같다.
오히려 더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경제는 잘 모르는 듯.
회사 경력이 있는 대학원생은 이 학교에 거의 없으니까.
군대 문제가 해결된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석 1년차들도 나와 다 동갑이거나 나이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한 명은 동갑이다.)
다들 그렇게 어려보이지는 않는 다.;
석 2년차들도 동갑인 것 같다. 00학번 친구들이 2명 보인다.
(흠. 왠지 석사 과정 사람들은 다들 동갑으로만 보이지?)

아는 후배가 있는 랩은 회식 때문에 술 마셔서 바쁘다는 데,
여긴 학기에 회식 1번, MT 1번도 잘 안가는 것 같다.
밥도 그냥 같은 플젝하는 3~4명이서 먹는 것 같고,
2개월 내내 있어도 나와 대화해 볼 사람은 몇 없을 것 같다.

토요일 오전에는 세미나도 있단다. 그 때는 다들 얼굴을 보겠군.
랩에서 남들이 뭐하는 지 알고 싶다면 세미나를 들어오란다.

대학원 수업은 정말 빡센가보다. 이번주까지 계속 수업을 하는 과목도 있고 듀도 30일까지인 것들이 있다.
1년 내내 일요일만 쉬고 휴가도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조교도 매우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매일 게시판 확인하고 답변글을 달지 않으면 교수님의 불호령이 떨어진단다.

댓글 2개:

  1. 거기 참 빡세군요. --;;; 상당히 암울해 보입니다. 다른 모든 실험실이 거기 같진 않아요. 뭐 장단점이 있죠. 빡센만큼 많이 배우겠죠. 실험실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먼저 다가가서 말거세요. 여기 사람들 특성상 신입들어왔다고 특별히 친절하게 하지도 않는 것 같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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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벌써 놀러와 주셨네요. ^^;

    사람들과 점심, 저녁 꼬박꼬박 같이 먹고 있답니다.

    Web 2.0 모임도 그렇고, 개별연구도 그렇고 사람들 많이 만나려고 시작한 것들이라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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