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날까지 나는 평생 어떤 장소에 정든 적이 없었다.
항상 지금 살고 있는 곳, 살던 곳보다 나은 다른 어떤 세상에 가기를 원했다.
유치원 때는 아기곰 푸우가 사는 세상에 가고 싶었고,
고등학교 때부터는 미국에 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처음으로 그곳을 떠나는 게 아쉬웠다.
그 뒤로 나가 있던 장소들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KAIST를 떠나서 서울로 올라가던 날도 그랬고,
서울을 떠나 다시 KAIST로 가던 날도 그랬다.
유럽 여행 중에도 떠나는 도시들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어딜가든 사진을 많이 찍는 다.
헝크러진 침대 위 이불이나 옷장 속까지 꼼꼼히 찍는 다.
특히 유럽여행 중에는 파리를 떠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에펠탑 야경도 3번이나 보고 유람선도 2번이나 탔다.
파리가 가장 멋지기도 했고, 유럽을 떠나는 것이었으니까.
프라하나 베니스처럼 하루만에 정이 든 도시들도 있었다.
다음 주면 여기를 또 떠난다.
한국을 그리워하는 마음보다는 UCSD 캠퍼스를 떠나는 게 더 아쉬운 것 같다.
이제 겨우 3주 있었고, 주변 친구들은 내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의 얼굴에, 그들이 있는 장소에 정이 들었다.
사실은 나도 그들을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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