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친척들 중에는 독서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내 주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다시 생각해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그 사람들의 책을 몇 권 빌려읽었는 데 말이지.
어렸을 때(아마도 6~10살), 막내이모와 작은외삼촌과 함께 살았었다. 소가족보다는 크고 대가족보다는 약간 작은 그런 가정이었던 셈이다.
외삼촌은 대학생이었고, 막내이모는 대기업에 다녔었다.
외삼촌 방에서 면도기로 장난을 치다가 입술이 베기도 하고 TOEFL, TOEIC이라는 이름의 책이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의 책장에 한 권씩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곤했다. (마치 성경책이나 정석책, 성문종합영어, 하이탑처럼 말이지.)
대학생 삼촌들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서 먼 친척 대학생 중 하나는 솔담배 케이스(종이와 비닐)을 100개쯤 모아서 이상한 모양의 장식품을 만들기도 했고, 우리 동네에서 안파는 과자들을 집에 쌓아놓고, 구질구질한 추리닝과 덥부룩한 수염으로 이상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댔다. 그리고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도 좋아했다. 게을러터져서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라면을 끓여먹고는 설겆이도 안하고 방에 쌓아뒀다.
막내이모 덕분에 약간의 문화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직원 할인으로 전자제품을 싸게 사기도 했고, 워크맨과 전축을 처음으로 구경하고 들을 수도 있었다.
(이어폰과 음악용 디스크판도 처음으로 구경해봤다.)
이모가 내게 처음으로 소개해준 외국 그룹은 뉴키즈 언더블락이다.
덕분에 워크맨도 구경해보고 라디오, 카세트 사용법도 배워서 4학년때부터는 매일 점심시간에 클래식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아마 EBS의 '정오의 음악선물'인가 하는 프로인 것 같다.
우리 외삼촌은 독서취향이 주로 한국역사소설인 것 같다. 태백산맥, 아리랑, 동의보감(한의학책 말고 허준의 일생을 그린 소설)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최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계셨다.
반면 우리 이모가 우리집에 두고간 책들은 실존주의, 페미니즘이나 뭐 그런 것들인듯하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소설 연인, 김현희(북한 공작원, KAL기 폭파범) 등..
집에 굴러다니는 책들이므로 중학교 때 몇 권은 읽어봤다.
외삼촌 책들은 양이 너무 많았고, 이모의 책들은 너무 어려워서 다 읽어보진 못했다.
아, 생각해보면 다른 추억들도 있다.
외삼촌이 비눗방울 놀이 세트를 사준적도 있었고, 이모가 롤러스케이트장에 데리고 간적도 있다. 스케이트장은 광산구 어디 쯤 있었던 것 같은 데, 아마도 지금은 상무지구나 송정동(송정리)가 아닐까 싶다. 너무 겁나서 결국 롤러스케이트는 배우지 못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