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27일 수요일

Worst scenario

항상 negative하게 worst scenario를 생각하곤 한다.
사실 내가 걱정하는 worst scenario는 죽음이라던지 그런것보다는
뭔가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니면서 어정쩡하게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 듯한 그런 공간이다.
(나중에 단테의 신곡을 읽고 비교해 봐야겠다. 내껀 얼마나 처참한지.)

요즘 나의 지옥은 특이하게도 광주에 있는 우리집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어야 겠지만 별로 그렇지 않다.
왠지 집에만 가면 바로 바보가 되버린 느낌이다.
사료에 의해 사육당하고 운동도 못하고 하루종일 TV만 봐야하는 곳.
하루 종일 쇼파에 앉아서만 쉴 수 있다.

엄마가 주는 데로 먹어야지 식단을 고를 수도 없고
책상이 작아서 책을 볼 수도 없고 공부를 할 수도 없다.
컴퓨터도 거실에만 있어서 가족 중 2명 이상이 모니터를 관찰하게 된다.

마트가 하나 있긴한데, 크긴하지만 얼다가 녹다가 하는 아이스크림을 판다.
다른 과자들도 좀 그렇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은 15분 거리.
야식 사먹으러 가기는 꽤 멀다.
10시가 되면 불이 꺼지고 5시부터는 엄마가 세탁기를 돌리신다.
시내가는 버스도 15분에 한 대 밖에 안 온다.

1주일만 있으면 20대 후반인데, 부모님과 다시 살게 된다면 참 끔찍할 것 같다.
작년 연말부터 좀 경험하고 있는 데, 30대 후반이 넘은 이모는 이제 결혼하라는 압력에서 벗어났고 손자들 중 첫번째 타겟이 내가 됐다.
"현성이는 언제 취직하니? 공부만 하다가 늙어버리는 거 아냐?"
"장가도 가야지. 네 친구 몇은 갔다며."

전라도 사투리도 싫고 산책도 강제로 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공원 옆에 있는 공터에서 작은 텃밭을 기르고 계시는 데,
벌레들이나 붕붕거리는 곳에서 배추가 잘 자라고 있는 지 봐야한다.

나는 성격이 못되먹어서 그런건지 누가 간섭하거나 심지어 격려해준다는 것도 너무 싫다.
"그래 공부는 잘 되나?"
"밥은 잘 먹고 다니나?"
"춥지는 않아?"

"네", "그럼요.", "덕분에요.".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긍정적이고 예의바른 대답을 들을 것이 뻔하면서 왜 묻는 것일까? 앵무새 같은 대답이 너무나 싫다.
사람들은 그것이 오히려 인간적인거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게 더 기계적이다.
질문 목록과 대답목록 데이터베이스가 완전히 구축되어 있으니까
잘하면 컴퓨터 자동응답시스템으로 대체해도 될 것 같다.


부모님은 절대로 내 의견을 물어보시지는 않는 다.
옷을 살 때도 여전히 백화점이든 동네 옷가게든 함께 가야 옷을 살 수 있다.
절대로 돈을 직접 쥐어주는 일은 피하신다.
(서울이나 대전에 있으니까 용돈 받는 거지, 집에가면 짤 없다.)
"밥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데, 뭐가 필요한거냐?"

머리카락도 염색은 안되고, 파마도 안되고, 내일 육사에 들어가도 될 것 같이 하고 다녀야 한다.
물론 헤어스타일은 내가 귀찮아서 미용실 안가는 것도 있는 데,
아무리 범생이처럼 깍아도 아버지는 매시간마다 같은 문제를 지적하신다.

먹는 건 더 사주실 수 있어도 책은 안된다.
책을 사려면 다 읽겠다는 다짐과 여러가지 증거가 필요하다. 
사실 집에 공간이 부족해서 책을 더 살 수도 없다.
30년 전에 사서 30년간 아무도 펴보지 않는 책들이 가득해서
열심히 버렸는 데도 여전히 많다.
아버지가 눈치채지 못할 수준까지는 이제 다 버렸지만 여전히 많다.

전공이 전산이었는 데도 3시간 이상 컴퓨터를 하면 눈치가 보인다.
어머니는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와 방사능 낙진의 차이를 모르신다.
열심히 설명해봤지만 이제는 포기했다.
내 방으로 컴퓨터를 옮겨보려고 했는 데,
자는 동안 전자파가 내 뇌파를 건드려서 수면마저 방해할꺼라고 주장하고 계신다.
꺼진 컴퓨터에서는 전자파가 안나온다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안 통한다.

옷도 몇 벌 없지만 친구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옷부터 순서대로 버리신다.
제일 구리고 스타일 지난 옷만 집에 남아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내게 일어날 가장 현실적인 미래는 1년 or 재수해서 2년 뒤에
고향에서 4년간 다시 사는 것인데, 20대 후반이 끝날때까지 거기서 다시 살아야 하는 게 너무 싫다.

우리집안은 벌을 받을 때도 다른 집처럼 잠깐 실컷 혼나고 끝나지 않는 다.
서서히 한나절에서 며칠에 걸쳐 고문을 당해야 한다.

어떻게 지옥보다 고향이 더 싫을 수가 있을 까?
내가 악마라서 고향이 지옥인 걸까?


댓글 2개:

  1. 지옥이그만.. 광주에 있어도 나와서 살아. 나처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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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음, 여러가지 가정을 통해 얘기를 계속 전개해가니 웃기는 이야기만 하게되네. ㅋㅋ)

    위의 가정이 모두 현실이 된다고 쳤을 때,

    울 부모님은 나와서 살지 못하게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멀쩡한 집 두고 어디가겠다는 거냐?"

    "집세가 한, 두푼이냐?"

    "엄마가 맛있는 밥도 매일 해주는 데, 왜 나가서 고생이냐?"



    뭐 대략 이런 이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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