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8일 월요일

황희정승과 잭 웰치

황희정승과 잭웰치 모두 뛰어난 리더이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자신만의 철학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철학에는 근본적인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황희정승과 두 마리의 소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어느날 황희정승이 논에 있는 검은 소와 누런 소를 보고는 농사꾼에게 어느 소가 더 일을 잘하는 지 물었는 데, 농사꾼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소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일을 못한다는 것을 듣게되면 크게 실망할 것이니 소가 듣지 않는 곳에서 말을 했다는 일화.
모두를 존중하고 모두의 입장이 옳다고 해주며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남을 감싸주고 원만한 융화, 조화를 원하고 있다. 각자를 존중하주면 그들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만약에 그 농사꾼이 잭 웰치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잭 웰치는 뭐라고 대답했을 까?
잭 웰치는 candor(공평, 솔직, 정직, 허심탄회)의 관점에서 소들에게 솔직히 어느 소가 나은지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왜 옆에 있는 소보다 능률이 떨어지는 지 분석하고 노력하게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무조건 감싸주기보다는 잘못을 명확하게 지적해주는 것이다. 무조건 감싸주기만 해서 효율적이지 못하게 되서 결국 나중에 도태되게 되면 그 때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잭웰치의 철학에 가깝다.
존중을 받는 사람은 성공하기 마련이지만 존중이 지나쳐서 방관과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으니까. 또한 잘못을 지적해주는 것이지 그것이 바로 처벌과 연관된다고 할 수는 없다. 동양사회에서는 잘못을 지적해주면 그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처벌과 원망의 표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큰 것 같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짧은 시간내에 그것을 지적하고 수정하는 것이 행동심리학적으로 학습효과가 가장 높다. 동양사회에서는 잘못을 덮어주는 미덕이 있지만 사실 완전히 해결되고 잘못이 없어졌다기 보다는 지적이 지연된 것에 불과하다. 나중에 그것보다 더 큰 일을 저지르면 여죄(여도지죄)까지 함께 묻는 경우가 더 많다.
"네가 지난번에 작은 실수 할 때 그냥 모른체 했는 데, 너 이번에 이럴 줄 알았다." 같은 표현에서도 지적의 지연과 여도지죄의 추궁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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