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입이 좀 심한 것 같다.
어떤 과목의 수업을 들으면 완전히 그 분야의 사람처럼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을 듣는 학기는 심리학자처럼 생각하고 경제학을 듣는 동안은 경제학자나 경영자가 된다.
요즘은 유기화학을 듣는 데, 수업시간에 유기화학실험에 대한 질문이나 방법론이 너무 많이 떠올라서 문제다. 시험에서는 구조식과 반응만 잘 그리면 되지 유기화학실험에 관한 것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론과목이니까.
이론 수업시간에 실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좋은 자세지만 현실적으로 1년간 배우는 개론과목의 이론들을 한 번 씩만 실험한다고 쳐도 수천년의 시간이 걸린다.
24 같은 테러리스트가 나오는 드라마가 되면 실제로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어떻게 잭 바우어 같은 적과 싸워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conspiracy theory에 관한 것들을 보면 '그들', 'company', '정보기관'들을 어떻게 따돌릴 수 있을지 고민하곤 한다.
미국드라마를 많이봐서 그런지 요즘은 꿈도 영어로 꾼다. 항상 영어로 재잘거리는 친구가 한 명 나오는 데, 되는 말 안되는 말 다 지껄이면서 그 친구에게 내가 아는 걸 영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전산학을 배운 이후부터는 뭔가 resource를 쉬지 않고 돌려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utility = 이용률, 사용률, 가동률
그래서 효율성에 대한 집착도 심한 편이다. 아침마다 샤워를 할 때, 요리를 할 때 동선을 줄이는 법, 시간을 단축하는 법, multitasking하는 법을 항상 연구한다.
머리를 먼저 감는 게 나을지, 얼굴에 비누를 먼저 묻혀야 할지, 샤워하는 동안 커피포트에 물을 끓일지, 가스렌지에 감자를 구을지, 전자렌지에 우유를 데울지, 토스터에 빵도 같이 돌릴지...
가족들에게도 multitasking을 강요해서 피곤하게 만들곤 한다.
"이봐, 우리 시간 넉넉한데, 넌 왜 꼭 빵을 구으면서 커피도 타려고 하는 거야? 한 번에 하나씩 하라구."
전장에 나가있는 군인이나 ER에서 많은 환자들을 한꺼번에 다루는 응급의학전공의 같은 심리상태가 지속되는 것 같다.
요즘 많이 노력해서 빠져나오고 있지만 뭔가 열심히 해보려면 다시 그런 상태로 돌아가곤 한다.
연극/영화배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영웅을 연기할 때는 영웅이 되고, 거지를 연지할때는 현실에서도 몸도 잘 안 씻고 거지처럼 생각하고 악인을 연기할 때는 실제로도 좀 나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스필버그 감독도 쉰들러리스트를 만들 때 정말로 너무 우울해서 힘들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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