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있는 1만원짜리 알바 같은 것과 잡다한 1주일에 한 번 있는 일 몇개와 함께 살고 있다.
매달 200~300만원씩 벌 수 있는 직업적 기회를 포기하고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니, 시간을 낭비한 죄로 지옥불에 떨어져도 싸다. (무신론자지만 이렇게 표현하면 이해가 직관적이지 않은가?)
그냥 노는 것도 뭐 그리 취미는 아니라서 온갖 잡다한 다큐멘터리는 다 구해다가 보고 있다. 사실 내가 원하는 은퇴 후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역사, 정치, 경제, 철학 등..
비틀즈의 존 레논은 왜 미국정부에게 찍혔는 지,
신자유주의는 우리(혹은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지,
한국인은 왜 이런 습속(하비투스)을 가지게 됐는 지,
뭐 그런 것들.
세상에 책만큼 좋은 투자가 없다는 생각에 인터넷 서점에서 지른 5만원도 그렇고,
반면에 내가 포기한 일에 대한 아쉬움을 떨치고 집에 둘 공간도 없는 책 5박스(90권)을 팔려고 학교 게시판에 올려둔 일도 있고, 뭐 그렇게 살고 있다.
분서갱유랑 비슷하지는 않은 지, 책을 팔아서 밥을 사먹는 게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 돼지인 것은 아닌지 생각 많이 하고 있다.
집에 공간이 없어서 지난 20년간 받은 트로피를 모두 버린 것보다 전공책을 모조리 팔기로 한게 훨씬 가슴 아프지만 이렇게 정을 떨어내버리지 않으면 계속 집착하게 될 것 같다.
어제의 성공은 내일의 짐이 된다.
중간고사 점수든 인생이든 독립사건적인 면도 있어서 어제 운이 좋았건, 실력이 좋았건, 오늘 하루 동안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단순히 오늘만의 것일 수 있다.
이공계 위기에 관한 인터넷 게시판의 글을 읽으면 지금도 지옥에 있는 기분이고,
전산과 세미나에서 벤처에 있는 선배들의 꿈같은 이야기와 presentation을 들으면 IT가 미래를 선도할 천국에 가장 근접한 분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매일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고 해서 인생의 결정을 작년에 했던 것처럼 다시 번복할 수는 없다.
신문에 누가 몇 억을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느니, 배당을 받았다느니, 연봉 순위는 어느 직업이 몇 위이고, 갑과 을은 어떤 관계이고, 전문직의 탈세는 몇 퍼센트나 되는 지, 경제지에 유망 직업으로 뭐가 나고 그런건 나도 다 알고 다 생각해봤다.
HP의 주차장 신화, 살신성인의 의사, 갈릴레오의 종교에 대한 굴복, 페니실린의 우연한 발견, 퀴리부인의 백혈병, 월 스트리스의 천재들 그런 것도 다 들어봤다.
돈 많이 번 빌 게이츠고 워렌 버핏이건 그런 것이나 하루종일 봐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나도 방에만 앉아있지 말고 뭐든 해보려고 발광을 치지만 혈압만 오르고, 냉탕/온탕만 오고가지 되는 것은 없다. 차분히 앉아서 즐겁게 10년 뒤에도 도움이 될만한 다큐멘터리와 책을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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