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일 목요일

우리학교

방에 쳐박혀서 드라마를 볼 때는 나는 학교에도 있지 않고, 집에도 있지 않고, 순전히 내가 좋아하는 어느 가상공간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나는 학교를 떠나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매번 엔드리스 로드를 통해서 쪽문에 나갈때마다
매주 실험을 하러 자연과학동으로 내려갈때마다
매주 도서관 스터디룸에서 과외수업을 할때마다
매달 전산동에 한 번씩 가서 리모델링 하는 걸 구경할 때마다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세미나를 들을 때마다
아침 10시에 태울관으로 수업을 들으러가는 후배들의 러시를 볼때마다
떠났던 고향을 오랜만에 돌아간 느낌이다.

지난 2개월간 마치 오디세이처럼 10년간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느낌을 20번 쯤은 느낀 것 같다. 그러니까 200살 산 것처럼 말이지. 아니면 20번 환생한 것처럼.

나는 이 학교를 떠나는 연습을 참 많이 했다.
매 학기 이사짐을 싸서 방을 옮길때마다
광주나 서울에 가려고 택시를 타고 교문을 나가고 들어올때마다
3번이나 복학을 한 것이나
휴학하는 동안에도 졸업사진을 찍기 위해서 오고, 동아리 홈커밍데이에도 오고 말이지.

학교에서 내가 못 하는 과목 수업을 들을 때는 지옥처럼 싫고,
못하는 프로젝트를 억지로 할때도 그렇게 싫지만,
학교를 자전거로 돌면서 건물들을 보고 잔디밭을 보고 동그란 하늘을 마음껏 보고 밤에 별을 볼 수 있고 할 때면 세상 이렇게 좋은 곳이 없다.

매년 여름이든 겨울이든 벚꽃놀이할때든 한 번 쯤은 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자친구랑 와보고, 결혼하면 새로 생길 가족들이랑 와보고 홈커밍데이 때도 와보고 뭐 그런거.
내 고향은 여기 같아서 추석이든 설이든 광주가 아니라 여기를 와야할 것 같다.

유럽여행, 미국여행을 다녀와서 인천에 내렸을 때도 광주에 아무리 많이 돌아갈때도 명절때 할머니 사시는 시골에 갈때도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지만, 이 학교는 하루만 어디 놀러갔다가 저녁에 돌아와도 내 고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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