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쓴지 17년만에 처음으로 렌즈로 바꿨다. aesthetic한 면은 원래 신경쓰는 인생이 아니라서 그냥 안경 쓰고 다녔는 데, 주변에서 평생 그런 걸로 말이 많아서 말이지.
"안경이 에러다"
"범생이 같은 외모"
"라식해라."
영화 캘럭시 퀘스트에서 "울 엄마의 이름을 걸고"라는 표현을 죽도록 듣기 싫어하는 외계인역의 배우처럼.
내 자신은 사실 내가 안경 쓴 것에도 별로 불만 없고, 안경 쓴 남성이나 여성이 좀 더 외모가 떨어져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는 데, 다른 많은 한국사람들은 안경 쓴 사람은 좀 더 못 생긴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파마도 한 번 시도해 봤으니, 렌즈라고 못 할 건 없지. 지루한 인생에 이런 작은 도전이라도 하나씩 해보면서 재미를 찾아야지.
그냥 남이 파마하고 렌즈 낄 때는 몰랐는 데, 비용 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도 상당히 필요하다. 파마를 하려면 40분간 꼼짝없이 양념 통구이 바베큐 신세가 되서 미장원 의자에 묶여 있어야 하고, 렌즈도 그렇게 호락호락 낄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파마 용액은 통구이 바베큐의 끈적한 소스처럼 찐득거린다.)
눈을 크게 뜨고, 두 손으로 눈꺼풀을 밀어올리고 내리고, 손가락을 눈동자 한가운데로 찔러넣어서 렌즈를 사뿐하게 올리라는 데, 인간이 어떻게 그런 짓을 공포감을 느끼지 않고 할 수 있지?
그 공포감과 어색함, 렌즈의 이물감은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 까?
. 두발 자전거, 롤러스케이트(롤러블레이드), 스노우보드, 스키를 처음 탈때, 넘어져져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깨지거나 피부가 쓸려나갈 것 같은 공포감.
. 삼각빤스만 입고 살다가 사각빤스로 바꾼 느낌. (혹은 vice versa)
. 처음 수영장에 수영복만 입고 나갔을 때의 어색함.
.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억지로 걸으려고 하는 초등학생.
. 평생 바지만 입고 돌아다니다가 치마를 처음 입어본 사람. (아일랜드 킬트라든지)
. 팔자에 없는 외모에 신경쓰는 여고생된 느낌.
. 번지점프를 5m마다 하면서 100m 절벽을 한 칸씩 내려오는 느낌
. 이발사 아저씨가 면도날로 내 목덜미의 털을 밀 때의 오싹함 (서부극에서는 그러다가 죽는 악당 보스들도 있어.)
내 인생의 재미는 이런 짓을 하면서 느낀 점을 글로 쓰고 어색함을 극복하는 것.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 안경점 직원들과 몇 번이고 시도하는 데, 도무지 안되네. 나같았으면 화냈을 것 같기도 한데, 서비스업이라서인지, 남들도 이렇게 힘들게 렌즈 끼는 법을 배우는 건지 차분하게 잘 가르쳐 준다.
수영강사가 초보들을 눕혀서 밀어주는 거나 허우적대면 일으켜 새워주는 것처럼, 눈에 넣어주고 눈 구석에 렌즈가 처박히면 빼주고.
나도 치과의사되면 침 질질흘리고, 안 하겠다고 떼쓰고 도망가는 꼬마 환자들을 이렇게 봐줘야 되겠네. (사실 꼬마환자들만 그런건 아니지.)
유지보수의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아침에 헤어드라이도 귀찮아서 안하고 셔츠 다림질도 안하는 데, 매일 2~3가지 용액으로 렌즈를 세척해야하다니. 이건 뭐 매일 밥주는 금붕어 같은 애완동물이나 가끔 목욕시키는 강아지 키우는 것 같은 노동.
@ 유행 다 지나고 이제는 라식의 시대인데, 나만 삐삐차고 다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