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고종희 지음
한길아트·2만2천원
그림이 드러내는 권력과 미술의 함수관계는 무엇일까. 당장 대답하기 난망한 이 물음을 15~16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들은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초상화 양식을 통해 교묘하면서도 거리낌없이 풀었다고 미술사가들은 말한다. 쉽게 풀어 말하면 당대 초상화엔 권력자를 이상화한 주인공이 있고, 그 옆에는 그의 후계자나 권력의 지지대인 측근들이 버티곤 했던 것이다. 항상 르네상스 3대 거장이라는 라파엘로의 걸작 초상화로 꼽히는 <교황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 베네치아의 또다른 거장 티치아노의 미완성작 <교황 파울루스 3세와 두 손자>, 멜로초 다 포를리의 <교황 식스투스 4세와 조카들>을 보면 한결같이 후손과 측근들이 추기경 등의 모습으로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최고 권력자와 특수관계라는 일종의 증명서 구실을 했던 이들 그림은 당시 타락했던 정치사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16세기 교황들이 10대 아들, 손자들에게도 마구잡이로 추기경직을 주면서 억지 친정체제를 만들고자 고심했다는 사실은 곧 종교개혁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는 요인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집단초상화에서도 양상은 비슷해서 14세기 중후반 베노초 고촐리나 기를란다요는 주군으로 모셨던 피렌체 메디치가나 사세티가를 위한 가족 예배당 등의 집단 초상화에 유럽 주요 제국의 황제와 권력자 등을 숱하게 그려넣어 교묘한 친분을 과시했던 것이다.
르네상스시대에 본격 태동한 초상화가 묘한 복선을 깔고서 발전해갈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이 책의 지은이는 이렇게 살을 붙여 설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피사대에서 유학한 저자는 당대의 이탈리아, 플랑드르(벨기에·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의 주요 초상화가들을 항목별로 거명하면서 평이한 글투로 명화들과의 속깊은 만남을 길라잡이해준다. 책을 이끄는 열쇠는 르네상스 인본주의 시대를 이끌었던 당대의 권력과 욕망, 그리고 다소 동떨어진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단순한 거장들의 시대로 오인될 수 있는 르네상스 이해의 함정을 피하면서, 책은 인물 그림 속에 아롱진 권력투쟁, 동시대인의 고민 등 정치, 문화사적 요소들을 끄집어낸다.
교황·귀족들 권력욕에서 보통사람 소박한 모습까지
맑고 생생한 붓질에 담긴 르네상스 시대상 끄집어내
다양한 자료에 감칠맛
책을 보면 초상화 도상이 확립된 것은 15세기 초의 이탈리아 피사넬로와 플랑드르의 유화 발명자 얀반에이크 때부터라고 한다. 다만 두 지역에서 초상화미술은 출발의 성격이 달랐다. 자신의 명예와 이름을 영원히 남기려는 권력자나 대귀족을 그렸던 이탈리아 작가들이 고대로마의 황제 메달에서 모티브를 삼았다면 플랑드르쪽은 현실적인 상인사회의 자각과 섬세한 자연주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나 성부를 다룬 기원화 등에 성인들과 동등한 크기로 후원자가 등장한다든지, 예수그림 등의 배경 따위가 당시 세속도시와 사교계의 풍정을 꼭 빼도록 그린 점 등에서 공통된 세속주의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저자는 놓치지 않는다. 원근법 등의 자연과학적 성과가 덧입혀지고, 이런 발전이 마침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푸마토 기법(윤곽선을 흐리는 기법)이나 라파엘로의 이상적 조화미, 티치아노의 추상적인 색채미를 기점으로 전화하는 과정도 보여준다.
하지만 미술사적 설명과는 별개로 저자의 애정어린 시선은 베네치아 화파의 초상화 전통을 이어나간 로렌초 로토(1480년경~1556)에게 극진하게 와닿는다. 거물이 아닌 평범한 젊은이, 부부들의 소박한 모습들을 사진처럼 정밀하게 포착했던 그의 그림은 아련한 빛의 효과를 통해 주인공 내면의 심리 세계와 욕망을 날카롭고도 신비스럽게 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저자의 애정은 평범한 인물 군상에 초점을 들이댔던 플랑드르 화가인 반데르 웨이덴, 크리스투스의 맑고 생생한 초상화에도 예외없이 적용된다. 바사리의 예술가 열전 등 다양한 국내외 자료들을 섭렵한 저자의 글투는 처음엔 덤덤하다가 읽을수록 감칠 맛을 나게 한다. 영원한 묘사의 붓질로 짧은 인생의 벽을 넘어서고자 했던 당대 사람들의 욕망과 약육강식의 당대 사회상이 아롱진 도판들 목록을 접으며 저자는 말미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화가는 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한 시대의 증인으로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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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홈피에 친구들 사진을 올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가 있다.
이 친구들과의 친분 관계를 강조하기도 하고 자신의 사진이 있으면 아무래도 그걸 보기 위해 한 번이라도 더 내 홈페이지를 찾아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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